사실 마지막 글을 쓴 뒤론 하지도 않고 아예 지워버렸었는데... 마무리 글을 한 1년 안 썼나. 맺음은 지어야겠다 싶었다.
동영상'만' 잘 만드는(최근 데이어스 엑스에서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다만 아예 영화로 만들면... 설명 생략) 스퀘어 에닉스에서 PC로 낸 몇 안되는 RPG인데... 스퀘어 에닉스의 시대 착오적인 생각과, 도무지 선택과 집중이 안 되는 생산 관리가 아주 잘 보이는 RPG였다.
그래픽은 자체 엔진 대신 언리얼 엔진을 사서 썼다고 하는데, 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PC 기술이 모자란 건지 엔진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 했다. 덕분에 컴퓨터가 빠르든 느리든 텍스처 스트리밍이 심하고, 캐릭터에 집중하는 일본 RPG의 특성상 구린 배경 텍스처와 괜찮은 인물 텍스처가 비교가 되어서 배경 텍스처의 도트가 더욱 튀어보인다.
일단 그냥 노말로 엔딩만 보는 건 대략 40시간 정도면 되는데, 2회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땐 하드 난이도가 가능. 여기에서 스퀘어 에닉스의 병크가 하나 터지는데... 스토리에 집중하려면 후반부 플레이어를 버려두고 혼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스토리를 잡아야했고, 야리코미 플레이를 노렸다면 노말 / 하드 난이도의 정밀도를 올려야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둘 다 안 되어있다.
스토리의 경우엔 필자가 영어가 약해서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는데... 세계관의 인물들이 아는 '렘넌트'가 뭔지는 플레이어가 피상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에 밀접히 관계되었을 렘넌트의 '진실'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맥거핀처럼 원래 아예 없는 건가? 그러기엔 또 이상하고. 그리고 패왕이라는 친구는 뭔가 있는 것처럼 튀어나오지만 그냥 때려잡을 나쁜 놈이었고... 이건 100% 개발하다 일정 안 되어서 잘라냈겠지만. 중간의 렘넌트 폭주는 진짜 전혀 모르겠다. 폭주는 왜 한 거고 이리나는 왜 기절한 거고 둘 사이의 관계는 뭐냐. 패왕 위에 있는 노친네는 또 뭔지 다른 애들은 왜 얘에게 쪼는 건지. 여하튼 설명 부족의 극한을 달린다. 플레이어는 그냥 이리 가라 해서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해서 저리 가고 그러다 엔딩인데 시펄 이건 뭐... FF8의 악몽이 또 떠오른다. 밑도끝도없는 개발새발 스토리의 중구난방전개.
그리고 스토리가 별로면 게임 난이도를 정말 도전적으로 잘 만들던가... 전투 시스템은 적응하는데 상상을 초월한 시간이 걸리게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놨지만(적응하고, 그걸 이용해서, 플레이에 유리하게 적응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 익숙해지는 시점이 1회차 후반부다!), 딱히 다른 RPG의 전투 방식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냥 다를 뿐이고, 사실 필자는 그런 개성을 대단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건 차별점에 비해 그 대가가 너무 크다. 초반부 플레이어가 삽질하고 몹과 빈번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배틀 랭크가 쓸데없이 오르고 그러면 플레이어 캐릭터는 별로 강해지지도 않는데 몹은 세지고... 초보자 학살 시스템. 어차피 지금은 레벨이 올라도 플레이어 캐릭터를 강화시켜주지 않는 게임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레벨 대신 배틀 랭크라고 써놔도 그건 본질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 그냥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투 시스템에 파고 들어가보면... 각 캐릭터는 3개까지의 아츠( = 스킬 트리. 이것도 필자가 볼 땐 말장난)를 쓸 수 있고 각 각 아츠마다 스킬이 최하위부터 최상위까지 주루룩 있는데, 처음부터 모두 쓸 수 없고 아츠를 전투 중에 '사용해서' 아츠 경험치를 쌓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캐릭터 여럿을 모아 유니온을 결성하고, 커맨드는 유니온에게 주기 때문에 유니온에게 커맨드를 줘도 해당 캐릭터가 아츠를 쓰는 것은 '확률'이다. 쓸모없는 아츠를 다 잠가도 그렇다. 평타는 여러분 곁에 이 노가다가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는 아이템 아츠의 돈지랄은 그냥 에디트하고, 무기 업그레이드도 다 해줬지만, 이 아츠 노가다 때문에 300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바쳐 거의 게임 엔딩 가까이 가서 때려쳤다. 사실 '라스트 렘넌트'를 못 깨서 짜증나서 그런거지만. 게다가 노가다하는 동안에도 배틀 랭크는 오른다.
아츠는 종류가 크게 물리 / 마법 / 아이템 계열로 나뉘는데, 아이템 계열은 공격력 쪽으론 별로 쓸모없지만 모랄 관리 / 회복 / 부활 / 버프에 쓸모가 크다. 하지만 이 게임의 아이템은 매질을 소비한다. 그리고 매질은 비싸다. 무조건 사용해야 다음 아츠가 언락되는 시스템이라 유니온에 아이템 아츠를 쓰는 캐릭터가 많아지면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돈 노가다를 해야 한다. 필자는 못 버티고 아예 에디트를 썼는데, 못 되어도 1, 2천만 골드는 쓴 듯. 아이템 계열을 포기하면? 단순 계산해도 캐릭터의 1/3을 못 쓴다...
캐릭터의 성장 방향은 물리, 마법, 균형 세가지가 있는데. 보통 균형을 쓰게 된다. 왜냐하면 무기 업그레이드도 저 선택을 따라가는데, 물리 캐릭터는 물리 공격 / 방어가 약하고 마법 공격 / 방어가 약하다. 물론 마법 캐릭터는 반대다. 유니온의 방어력은 유니온을 형성하는 캐릭터들의 평균치인데, 이런 애들이 들어가있는 유니온은 게임 후반에 전투하면, 물리 방어가 약하면 전체 마법 맞고 한 큐에 죽거나 빈사, 마법 방어가 약하면 전체 공격 맞고 한 큐에... 어인처럼 생긴 종족은 물리 전문이라 렘넌트 무기를 든 몇몇 친구들을 빼면 전부 나중엔 쓰레기로 전락한다. 개구리 친구들은 마법 전문이라 그 반대. 캐릭터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강한 방어력을 가진 유니온에 넣어줄 순 있는데, 그것도 한두명이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수십명이라도 이렇게 '버리는' 캐릭터를 만들바에야, 그냥 절반이라도 좋으니 쓸만한 녀석이 좋지 않았을지.
그리고 복잡함을 방지하기 위해선지 캐릭터들의 아이템은 간소화되어 공격력은 물론 방어력도 무기 하나로 결정되는데, 이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노가다가 상상을 초월한다. 특정맵을 들어갔을 때 2% 확률로 나오는 몹을, 잡았을 때 30% 확률로 나오는 시체에서, 시체를 분해했을 때 5% 확률로 나오는 아이템을 2개 요구하는데... 와 씨발 -_- 물론 이건 가장 극악한 확률의 아이템이고, 저 확률 지랄도 세이브/로드 노가다로 어느 정도 극복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저걸 넣어놓은 게임 디자이너의 대가리 그 자체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확률 놀음을 한 건지 진짜 뚜껑을 열어서 들여다보고 싶다. 이건 MMORPG가 아니라고. 이걸 또 최소 18개 캐릭터에게 해줘야 되요.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무조건 렘넌트 무기를 든 캐릭으로 가야 한다. 렘넌트 무기는 공방이 균형있게 아주 높고, 업그레이드 재료도 아주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랜덤이 너무 심하다. 랜덤성 전혀 없이 주인공이 50 50 50 때리다가 렙업해서 60 60 60 때리는 것도 재미없지만, 똑같은 캐릭, 똑같은 장비, 똑같은 소모품을 들고 덤볐는데 어떤 판은 무피해로 보스를 캐발라버리고 어떤 판은 보스에게 기스만 내고 파전멸, 이런 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기 떄문에 내가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어디가 모자라는지, 그걸 메꾸려면 얼마나 더 노가다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전혀 판단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냥 닥치고 노가다해라 이거지.
하지만 상기에 쓴 문제들은 사실 전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었다. 한 30년 전에는. 하지만 게임은 21세기에 나왔다. 거의 대다수의 게이머는 캐주얼하게, 좋은 스토리의 RPG를 좋은 그래픽으로 즐기길 원하고, 정말 소수가 남은 하드코어 게이머는 좀 더 완성도 높은 시스템을 갖춘 게임을 원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둘 모두에게 심각하게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