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온라인이 신이 내리신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그 게임을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올드비" 딱지를 붙인 뒤 스스로 우월감에 쩔어, 고개를 높이고 목을 뻣뻣이 하여 타인을 깔보고, 관심법이라도 쓰는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린저씨'라 판단하여 '이 게임은 님이 지금까지 한 국산 게임과 다르고요'라는 개소리부터 씨부리는 이들의 출입을 금함.
90년대 후반이었고, 패키지 게임이 꽤 잘 나가던 때였다. MMORPG들의 태동기이기도 했고... 그 때 내가 가장 즐겨보던 잡지는 게임피아였다. 뭐랄까, 돈 냄새가 가장 적게 났기 때문이었다. 광고 분량도, 책 내용도. 대신 가장 먼저 망한 잡지 중 하나가 되었지만.
거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던 기사 중 하나가 울티마 온라인 기행기였다. 그 글을 읽다 보면, UO에는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 보였고, 날마다 다른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때문에 2000년 봄에 잡지 부록으로 제공된 UO CD로 내가 UO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땐 하이텔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때여서 개오동 UO길드를 찾아서 들어갔고, UO는 커뮤니티 지원이 매우 약했기 때문에 IRC도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게임을 시작하든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고, 첫 적응에 가장 무리 없는 캐릭으로 시작하려고 했기 때문에(보통은 전사다) 전사를 택해 시작했고 동물부터 죽여가며 천천히 캐릭터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탈 것이 타고 싶어서 남는 스킬치로 테이밍을 약간 올려서 초록색 오스타드(이후 오타)를 꼬셔서 타고 다녔다.
처음에는 그냥 몹을 더 빨리 죽이기 위해 오타에서 내려서 공격을 시켰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타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당시의 대세는(심지어 GM마저) "펫은 성장하지 않으며, 꼬신 상태 그대로다"였는데(당시엔 수치 확인이 불가능했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거, 때문에 다른 길드원과 논쟁도 자주 했다. 결론은 한 번 싸워보자!였고, 당시 길드 건물로 쓰던 타워의 옥상에서 갓 꼬신 오타와 내 오타가 붙었다. 결과는 내 오타의 압승. 나중에 공개된 일이지만, 스탯은 125(이 이상 스탯은 고정), 스킬은 100.0까지 올랐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 오타가 이길 수 밖에.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가 UO 하던 중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오타는 죽었다. 길원의 블러드 엘리멘탈 사냥에 따라 나섰다가 실수로 죽은 것이다. 지금은 펫이 죽어도 유령이 나타나고 부활도 되지만 당시만 해도 한 번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그 땐 정말... 실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 와우에서 단지 펫 때문에 사냥꾼으로 시작한 것도(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마 보호 전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펫 얘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애완 동물을 단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더 감정이입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게임을 고를 때 펫 여부(장식 말고, 실제 공들여 키울 수 있고 내게 도움이 되는)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길 것 같다.
하여튼 이후론 테이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래건, 나이트메어 등 더 강력하면서도 잘 죽지 않는 펫을 다룰 수 있고, 전사보다 사냥 및 돈벌이에도 뛰어나지만, 키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캐릭터. 스킬 올리는데 열성을 가지는 타입은 아니라 놀러다니기도 하고 사냥도 병행하면서 느긋하게 하다 보니 테이밍 스킬을 GM 달 때까지 1년이나 걸렸다. 그땐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까지 나는 집을 장만했고, 전사, 테이머, 생산직을 갖고 있었고(거의 다 GM), 충분한 재산을 갖고 있었다. 거의 모든 대륙을 다 돌아다녔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았다. 자... 그럼 더 이상 뭘 위해 게임을 하지? 추구할 게 없었다.
사실 UO의 시스템은 PC간의 상호 협력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필요한 물품은 NPC 상점이나 PC의 벤더에서 살 수도 있지만, 생산직 캐릭터를 만든 뒤 일주일만 매크로 돌리면 필요한 스킬을 모두 GM 달고 원하는 물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편이 훨씬 싸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제조 물품의 대부분이 아예 살 필요조차 없는 장식품이라는 거지만. 파티플레이는 기본적인 것만 지원해주지만(파티원의 HP 바 띄워주는게 다다) 그나마 아군의 HP 바가 화면에 뜨는 순간 랙이 느껴지며, 결정적으로 모든 던전이 몇몇 몹만 제외하면 테이머 혼자서도 다 쓸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누구나 테이머로 혼자 10만 GP를 벌기 원하지, 2명이서 수리비, 붕대값, 물약값, 마법매질비 등을 들여가며 파티플로 5만 GP를 벌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들 알다시피 UO는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이 아니었고, UO를 하면서 필요에 의해 길원을 만나는 것 외엔 거의 대다수의 시간을 홀로 보내야했다. 서로 협력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 보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전사 키울 때 이른바 '본나방'에서 본나이트 치던 때가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 함께 플레이한 유일한 경험이었다. 나중엔 본나방도 패치로 쓸모없어져, 다들 각개 플레이로 전환. 혼자 하는 MMORPG 처럼 재미없는게 있을까?
혹자는 PvP의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UO에선 시체가 남고 그 안에 모든 물품이 다 남는다는 걸 기억하라. 말을 타고 번개같이 달려와 3초 안에 날 때려 눕히는 머더러에게 내 드래건은 그냥 굼벵이 파충류였고 나는 그냥 밥이었을 뿐이다. UO의 스킬은 많지 않다. 중요한 건 움직임의 컨트롤과 타이밍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들을 뒷받침해주는 핑이었다. 몇번 펠루카에서 당한 뒤로 난 트러멜에서만 놀았고 그게 더 잘 맞았다. 사실 성향 자체가 극 PvM이긴 하지만. 와우에서 PvP에 재미를 들인 건 BL단원들의 강력함에 기대어 그 달콤함에 취한 탓이 크다. PvP를 위해 캐릭터를 새로 키우고 수련할 엄두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1:1의 도구는 RTS부터 FPS까지 다양하다. 굳이 UO에서 그걸 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와우는 힐도 메즈도 있어서 파티플이 PvM이든 PvP든 다양하지만, 내가 겪어본 UO의 PvP는 FPS인 UT보다 훨씬 더 빨랐고, 한 번 죽으면 뒷수습도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2004년에 획기적인 유틸리티가 등장했다. C like code 기반의 매크로 유틸리티였다. 코드를 작성해서 돌리면 UO내의 기본 매크로 코드를 동원해 시키는 일을 정확히 해주었다. 처음엔 클릭을 자동으로, 다음엔 스킬을 자동으로, 마침내 자동 사냥 매크로까지 등장했다. 걸고 하룻밤 자면 100만 GP... 이것은 진짜다. 다른 게임의 오토 마우스 따위완 차원이 달랐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은 코드를 비밀로 했지만, 문제는 불평등이다. 누구는 수동으로 1시간에 10만 GP, 누구는 걸어놓고 놀다오면 100만 GP. 더 이상 할 맛이 안 났다.
1999년 봄에 시작해 군대 다녀와 2004년 겨울에 그만두었으니, 정확하게는 4년 정도 한 셈이다. 그래도 중간에 시스템을 확 바꿔버린 LBR이 플레이 타임을 늘려주긴 했지만, 결국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었다. 위에 써놓은 많은 단점과 더불어 몇년이 지나도록 컨텐츠가 추가되지 않는, 변하지 않는 작은 세계에 난 질렸다. 모든 시스템은 다 파헤쳐지고, 모든 장소는 공개되었다. 모험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 아니던가? 모든 것을 다 아는데 어떤 것이 모험이 된다는 건가?
혹자는 로드 브리티쉬나 EA의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가 남아있거나 EA가 지원을 더 해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MMORPG는 만만한 게 아니다. 더 다양한 던전과 몹, 더 많은 장비, 더 많은 마법,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밸런스에의 끝없는 욕구와 갈망을,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시작부터 좁고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시작한 게임에 지원을 더 해준다고 달라졌을까. 난 회의적이다.
3개월 코드는 사서 입력했지만 접속하지 않는 날이 늘어가고... 결국엔 돈도 넣지 않게 되었다. 캐슬도, 재산도 다 날아갔겠지. 블로그의 글 끝마다 붙는 시그니처도 다 정리했고, 즐겨찾기의 사이트도 다 정리했고, IRC의 채널도 정리했고, 게임 CD도 정리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라그처럼, UO도 이제 끝이다.
그래도... 한때는 정말 재미있게 즐겼다. 앞으로 다른 게임들을 하겠지만, 브리타니아와 그곳에 잠든 내 초록 오스타드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는 바람에 내 오스타드의 스샷을 잃어버린게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