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온라인이 신이 내리신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그 게임을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올드비" 딱지를 붙인 뒤 스스로 우월감에 쩔어, 고개를 높이고 목을 뻣뻣이 하여 타인을 깔보고, 관심법이라도 쓰는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린저씨'라 판단하여 '이 게임은 님이 지금까지 한 국산 게임과 다르고요'라는 개소리부터 씨부리는 이들의 출입을 금함.
2002년, 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2년간 해오던 울티마 온라인(이하 울온)은 신규 유저의 영입은 거의 없이 모두 그만두기만 했고, UO2는 취소되었다. 1월에 입대한 내가 2004년 군대에서 나왔을 때 울온이 남아 있을지, 적어도 국내 서비스 여부는 불투명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겨워진 것도 있었다. 2년 동안 하면서 디스코 테이머를 키워 거의 완성을 했고, 그럭저럭 재산도 모았다. 많은 곳을 가보았고 많은 일을 해보았다. 더이상 욕망할 것이, 추구할 것이 없었다.
당시엔 리니지 2가 안 나왔었고 한국내 MMORPG Top 3는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 온라인(이하 라온)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그 게임들이 왜 인기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온라인 게임 기행, 공략을 봐도 모두 엄청난 노가다였다.
그렇다고 MMORPG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게 정말 좋았기 때문에... 울온이 안 된다면, 다른 게임을 선택해야 했다.
소거법을 사용했다. 리니지. 전에 계정 만들 때 3일 무료 가능한 걸로 해본 적이 있다. 30분 하고 때려쳤다. 도저히 필자가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뮤. 해볼 필요도 없다. 실제 플레이어보다 Bot이 더 많다는, 천박한 3D 그래픽과 매크로의 정수.
일단 그래픽이, 플레이어의 눈이 가장 많이 가는 캐릭터들은 전부 2D로 깔끔하게 해놓았고, 置活?3D였다. 덕분에 시점 돌리기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가능해졌고, 낮은 사양에 괜찮아 보이는 그래픽을 구현했다. 캐릭터도, 몹들의 그래픽도 귀여운 풍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고 타격시 그래픽도 눈이 즐거웠다.
악튜러스 때의 TeMP가 다시 배경 음악을 맡아 다시 그 특색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고, 몹마다 다른, 경쾌한 타격음이 때릴 맛이 나게 해주었다. 필드에서 새가 짹짹거리는 환경음도 듣기 좋았다.
인터페이스는 익히고 다루기 쉬웠고, 노비스로 시작할 때 튜토리얼도 좋았다.
전투 시스템은 매우 잘 짜져있다. 무엇하나 버릴 게 없는, 각자 좋은 점이 있는 캐릭터의 6가지 스탯. 속성, 형태, 크기에 따른 다양한 대미지 증감 요소. 그를 활용한 속성 무기와 카드 무기들. 흔히 말하는 '지존 무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사냥터에 알맞은 무기와 갑옷의 마련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레벨이 오르면서 눈에 띄게 강해지는 캐릭터가 좋다. 사냥이 즐겁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걸 희석시킨다. " tt_lesstext=" 그러나 시간이 모든 걸 희석시킨다. ">
그래픽엔 익숙해지고, 한 장소에서 레벨업을 위해 수십 시간에서 수백 시간 있으면서 수천번을 듣게되는 BGM에는 질린다. 오로지 MP3만 듣게 된다.
갈만한 곳은 모두 가보았고, 레벨도 올릴만큼 올렸다. 라온에서 할 수 있는 것엔 3가지가 있었다. 레벨업 사냥, 보스 죽이기, 공성. 하지만 보스잡기와 공성에는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뿐더러, 사냥을 통한 고레벨, 고가장비가 아니고서는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은 레벨 노가다로 귀결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희석시키지만, 라온이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오직 하나의 목표 - 레벨 노가다는 그것의 진행을 더욱 빠르게 한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레벨 노가다에 대한 불만. " tt_lesstext=" 레벨 노가다에 대한 불만. ">
인간은 뇌에 끝없는 자극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지루한 일상은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그래서 게임을 한다. 하지만 라온은 그다지 그런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짧은 시간 간격으로 찾아오는 레벨업, 그에 따른 장비교체, 이어지는 사냥터의 이동, 사냥터의 지형과 나오는 몹에 대한 연구...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갱신이,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뎌진다.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70레벨 정도가 되면 최종 사냥터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후로는 짧게는 몇십 시간에서 길게는 수백 시간을 레벨업 한 번을 위해 몹을 잡고 있게 된다. 맵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 주제에, 비효율적인 맵이 너무 많아서 효율적인 사냥터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렇다고 인기 사냥터가 넓은 것도 아니고, 그 사냥터의 몹이, 그 사람들을 만족시킬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다. 같은 장소, 같은 캐릭터, 같은 스킬, 같은 몹... 뇌는 휴식, 손가락은 운동. 그래서 레벨 노가다.
그렇다고 사냥 외의 즐길 것이 라온에 많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가진 게 레벨 노가다 밖에 없으면 그나마 좀 화려하고 풍성하게 꾸며보든가.
커뮤니티 게임? 뭘 하면서 커뮤니티를 하는데? " tt_lesstext=" 커뮤니티 게임? 뭘 하면서 커뮤니티를 하는데? ">
라온은 뭘 갖고 커뮤니티 게임이라는 걸까. 요즘엔 개나소나 지원해주는 챗방 시스템이나 길드 시스템 가지고? 필자는 라온의 파티플에 큰 기대를 했었다. 파티플이 그렇게 좋고 잘 되어 있으니 커뮤니티 게임이라고 했겠지. 플레이어끼리 서로 도우며 플레이하겠지. 파티플? 협동은 개뿔.
몰이 금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제재를 제작사에서 가한다는 것 자체가 라온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 수대로 경험치는 나누는 개떡같은 파티 시스템을 가진 주제에, 몬스터를 대량으로 몰아 잡지도 말라니. '저희 게임은 맵도 코딱지만하고 몹도 몇마리 없으니 싹쓸이하지 마시고 혼자 놀거나 2명이서 오붓하게 1마리씩 잡아 주세요'라는 얘기다.
라온에서 타 플레이어를 보면 일단 짜증난다. '저 놈만 없으면 저 몹들도 다 내가 잡는건데' 어느 날 이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놀란 적이 있다. 이게 라온에 빠진 필자의 모습이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에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있나? " tt_lesstext=" 라그나로크 온라인에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있나? ">
라온의 맵 추가를 보고 있으면 옛날 머드 게임 시절의 '무한대전'이 생각난다. 이 머드 게임은 오픈 무료 소스여서 이곳 저곳에서 서비스했었다. 주로 개인이 했고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가 일정 레벨이 되면 이름만 살짝 바꾸는 전직으로 계속 레벨 리셋을 시켰고, 맵의 집합체인 존은 아무 테마나 따서 넣었다. 그리스 신화 존, 인도 신화 존, 불교존, 공룡존...
라온의 원작은 만화 라그나로크지만... 처음 맵 제작할 때를 제외하고는 원작을 일관되게 '생까고' 있다. 일러스트도 원화도 다 다른 사람이 그리고, 게임의 스토리는 서비스 개시 때부터 완전 제로로, 전혀 진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니플헤임, 움발라, 코모도, 기타 등등... 로컬라이징 맵은 차치하고, 근래 추가되는 맵을 보면 이제는 맵조차도 원작을 무시하려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무한대전하고 다를게 뭔가. 계속 이렇게 단발성 맵만 추가할 것인가? 라온의 게임성은 레벨 노가다 뿐이기 때문에, 노가다용 맵만 추가해주면 자기 할 일 다 한 것인가?
이런 업데이트에 있어서, 라온은 리니지 1보다도 못하다. 리니지 1은 그래도 큰 스토리 윤곽이라도 있었고, 12 에피소드 패치 계획이라도 있었다. 평소 생까는 원작이 연재 중단마저 한 현재, 라온의 플레이어가 미래의 패치를 예상하고 희망할 수 있는 건 언제할지도 모르는 3차 전직 뿐. 그나마도 2-2차 전직과 전승 갖고 하는 삽질들 보면 암울할 뿐이다.
결론. " tt_lesstext=" 결론. ">
결국 레벨 노가다가 지겨워 때려치면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2003년부터 라온에 관심을 가지고, 반년은 실제로 플레이하면서, 필자는 정말 미치도록 답답했다.
2-2차는 크루세이더가 버그세이더라고 불릴 정도로 버그가 넘치는 데다 전승은 적용한 반년이 훨씬 넘도록 그래픽도 패치 못해서 아직도 대부분의 직업이 전승 전 옷을 입고 다닌다. 약속은 많이 하지만 제시간에 지키는 건 하나도 없고, 무슨 놈의 미구현은 그렇게 많은지 4레벨 아이템들을 보면 미구현 안 붙은 아이템이 없다.
상용화 2년 동안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나. 그리고 앞으로 게임의 세계를 넓힐 계획은, 게임의 질과 폭을 향상시킬 계획은 뭐가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울온이 LBR 확팩 때 디아블로식 시스템을 도입하고, 근래의 SE 확팩은 아예 일본풍으로 브리타니아 대륙을 물들여버렸지만, 라온처럼 정체되어 있느니 이렇게라도 바뀌는게 차라리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