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20. 18:01
뒷배경이야 어쨌든, 세상의 거의 모든 권력의 중점에는 '남자'가 있었다. 인류 수천년의 역사 동안 수없이 많은 왕국과 왕, 귀족 등등이 있었지만 거의 전부가 남자. 여성들은 그저 공식적인 직함 없이 뒤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을 조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왕이나,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매우 소수.
그러나,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여성의 몸으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이가 있다.
측천무후.
후궁으로 들어가 황제의 얼굴 한 번 못보다가, 황태자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고, 황후가 되고, 정치에 간섭하고, 황제가 된 뒤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황제가 된 사람.
이런 사실로도 놀라운 인물이지만, 의외로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한 악녀 정도의 이미지랄까. 물론 30년 넘게 황제를 하고 있다가 쫓겨나긴 했지만, 그건 권력을 탐하는 다른 자들의 행동이었고, 민중이 그녀의 지배를 거부했다거나 반란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 황제였을 것이다. 이 은폐는, 역시 남자들의 꼴사나운 질투일까.
작가 샨사는 이 유명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황의 일생을, 2권에 걸쳐 1인칭 시점에서 쓰고 있다.
* 작가에 대한 글은 넷에 넘치니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왜 중국인 여성이 파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흘러넘치는 국내의 대본소용 환협지와는 달리, 이 소설의 1인칭은 확실하다. 작가는 없고, 캐릭터만 존재한다.
측천무후의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들, 아버지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시골 생황, 닭장 같은 후궁 생활, 조와의 만남, 열애, 출산, 그리고 권력을 쥐는 순간에서 죽는 순간까지...
그녀의 일생이, 그녀의 시점에서 펼쳐지고 있다. 읽고 있는 그 순간은, 정말로 측천무후가 된 느낌.
어렸을 때의 불교 심취, 젊은 시절 선대 황제가 죽었을 때의 절 생활, 권력을 쥐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갈구하는, 더 높은 이상향으로의 열망. 신들의 세계, 불멸, 영광의 추구.
그와 동시에 세속적인 것들, 사랑 - 황제에의 사랑, 정부들과의 사랑 - 과 권력에의 탐욕 - 측천무후 자신과 친척들의 - 이 그려지고 있다.
아아 측천무후. 대제국의 정점에 선 절대의 권력, 하늘에 닿은 다시 없는 영광. 그러나 그 끝에서 되돌아 보았을 때, 자신의 이익에 매달린 정부들과 권력에 탐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그녀는 끝없이 외로웠다. 고독했다. 정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홀로만 있을 수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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