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8. 1. 21. 21:13
  오라전대 피스메이커 1 - 2032년, 인류는 아직 살아 있다  반재원 지음
2020년 3월 9일 삼차원의 세계에 게이트가 열리고, 그 게이트를 통해 이차원의 생물 몬스터가 지구를 습격한다. 지구인들은 외계의 침략자에 대항하기 위해 대(對) 몬스터 특무기관-피스메이커를 조직한다.

이걸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난다. 국산 판타지 소설과 그에 따라 나온 환협지를 열심히 읽었던 건 고딩 때였던 것 같은데... 1권의 출판일이 2003년으로 되어있다. 2차로는 군대에서 열심히 읽었으니 그때 본 건가. 그때 중간까지 봤고, 얼마 전에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이 소설에 대해 쓸 게 많다. 아는 것이 많거든... 세간에서 별로 긍정적인 평을 얻지 못하는 쪽의 지식이라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정확한 시기는 까먹었는데... 20세기 말에 나온 저패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팬소설 중에 제네시스 Q라는 소설이 있었다. 거대 인간형 병기 없이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의 설정을 바꿔 등장인물 + 사도(의 의인화)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던 소설이었는데 그 글의 질이 꽤 괜찮았다. 그때엔 프로의 수준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그냥저냥 읽을만 하다라는 느낌.

이 소설은 그와 유사하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 전대물을 집어넣고 곳곳에 일본의 비주류문화(아니 그냥 오덕후들의 재료들)를 배치한 뒤 적절히 섞은 그런 느낌. 특히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의 주요 부분의 차용은 그냥 패러디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개의 흐름을 그대로 집어넣은 것이라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5연속 헤어핀 코너는 너무하지 않았나).

웃긴 건 나는 읽을 당시엔 일본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프로 정신에 감탄했다는 점. 물론 따로 조사를 했겠지만, 만화를 보아 그것에 대해 알고 난 뒤 소설에 집어넣기 위해 추가 조사를 한 것과 아예 처음부터 소설에 추격씬 하나 넣으려고 생각한 뒤 조사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전반적인 소설의 전개도 위에 든 예시와 비슷하다. 어디서 본 세계관, 어디서 본 설정, 어디서 본 캐릭터, 어디서 본 이벤트, 어디서 본 전개의 연속. 그리고 어디서 본 결말.

하지만 난 이 소설을 작품으로서 인정하는 편이다. 여러 곳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성공적으로 자신의 글 안에 녹여넣었으며 21권이라는 장편으로서 마무리를 지었기 때문이다. 글 실력도 괜찮았고.

다만 출판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내가 보기에 인정할만한 부분은 녹여넣기와 마무리 뿐, 작가 자신의 창작력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률적인 저작권이 어쩌고 운운하기 전에 이런 팬픽과 패러디물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면서 돈 받을 수 있는 건가. 하긴 출판된 판타지 소설의 팬픽이 또 다른 판타지 소설로서 다시 출판되는 판국이니 이 정도는 별 것 아닌지도 모르겠다.

P.S. 1: 생각해보면, 재미와 웃음과 감동이 있는 쇼프로를 즐겁게 보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알고보니 일본의 쇼프로를 베낀거였더라...였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P.S. 2: 설정은 대체로 적절했다고 보지만 전대물의 공식을 지키기 위한 거대로봇과 그를 위한 그리스 신화는 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은 정말 붕 떠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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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enoa 2008.02.16 23:08  Addr  Edit/Del  Reply

    인터넷 연재물들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년간의 이 계통의 소설들은 읽을때는 재미있게 읽히지만 전체적을 분석하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배치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흔히 어린애들 장난인
    '100억을 받으면 얼마는 뭐하고 얼마는 뭐하고...'
    하는 식의 진행이 많죠.

    인터넷연재는 글이 실시간으로 게시물로 연재되니 매 게시물마다 적당한 에피소드를 넣거나 아니면 매우빠른 속도로 연재되어야 소설로서의 정체성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잡다한 어디서 본듯한 사건들이 순서대로 등장할 수밖에 없죠.

    제 의견으로는 애초에 전대물공식을 위한 거대로봇과 그리스 신화를 베이스로 작성된 글인데 위와같은이유로 잡다한 사건들이 들어가서 통일감있게 섞이려다보니 오히려 본질이 훼손된 경우라고 봅니다.

    • Favicon of http://dgdragon.namoweb.net BlogIcon DGDragon 2008.02.17 13:19  Addr  Edit/Del

      어... 인터넷 연재물이었군요. 책으로만 접해서 책으로만 나온 줄 알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국산 환협지는 초기엔 통신 연재물을 엮어서 냈지만 통신 연재물이 돌아다니는 통에 나중엔 책으로만 나왔으니까요. 인터넷 연재도 있는 건 알았지만 퀄리티가 별로여서 읽을 생각은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