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1. 21:13
이걸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난다. 국산 판타지 소설과 그에 따라 나온 환협지를 열심히 읽었던 건 고딩 때였던 것 같은데... 1권의 출판일이 2003년으로 되어있다. 2차로는 군대에서 열심히 읽었으니 그때 본 건가. 그때 중간까지 봤고, 얼마 전에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이 소설에 대해 쓸 게 많다. 아는 것이 많거든... 세간에서 별로 긍정적인 평을 얻지 못하는 쪽의 지식이라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정확한 시기는 까먹었는데... 20세기 말에 나온 저패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팬소설 중에 제네시스 Q라는 소설이 있었다. 거대 인간형 병기 없이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의 설정을 바꿔 등장인물 + 사도(의 의인화)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던 소설이었는데 그 글의 질이 꽤 괜찮았다. 그때엔 프로의 수준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그냥저냥 읽을만 하다라는 느낌.
이 소설은 그와 유사하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 전대물을 집어넣고 곳곳에 일본의 비주류문화(아니 그냥 오덕후들의 재료들)를 배치한 뒤 적절히 섞은 그런 느낌. 특히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의 주요 부분의 차용은 그냥 패러디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개의 흐름을 그대로 집어넣은 것이라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5연속 헤어핀 코너는 너무하지 않았나).
웃긴 건 나는 읽을 당시엔 일본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프로 정신에 감탄했다는 점. 물론 따로 조사를 했겠지만, 만화를 보아 그것에 대해 알고 난 뒤 소설에 집어넣기 위해 추가 조사를 한 것과 아예 처음부터 소설에 추격씬 하나 넣으려고 생각한 뒤 조사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전반적인 소설의 전개도 위에 든 예시와 비슷하다. 어디서 본 세계관, 어디서 본 설정, 어디서 본 캐릭터, 어디서 본 이벤트, 어디서 본 전개의 연속. 그리고 어디서 본 결말.
하지만 난 이 소설을 작품으로서 인정하는 편이다. 여러 곳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성공적으로 자신의 글 안에 녹여넣었으며 21권이라는 장편으로서 마무리를 지었기 때문이다. 글 실력도 괜찮았고.
다만 출판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내가 보기에 인정할만한 부분은 녹여넣기와 마무리 뿐, 작가 자신의 창작력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률적인 저작권이 어쩌고 운운하기 전에 이런 팬픽과 패러디물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면서 돈 받을 수 있는 건가. 하긴 출판된 판타지 소설의 팬픽이 또 다른 판타지 소설로서 다시 출판되는 판국이니 이 정도는 별 것 아닌지도 모르겠다.
P.S. 1: 생각해보면, 재미와 웃음과 감동이 있는 쇼프로를 즐겁게 보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알고보니 일본의 쇼프로를 베낀거였더라...였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P.S. 2: 설정은 대체로 적절했다고 보지만 전대물의 공식을 지키기 위한 거대로봇과 그를 위한 그리스 신화는 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은 정말 붕 떠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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