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온라인이 신이 내리신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그 게임을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올드비" 딱지를 붙인 뒤 스스로 우월감에 쩔어, 고개를 높이고 목을 뻣뻣이 하여 타인을 깔보고, 관심법이라도 쓰는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린저씨'라 판단하여 '이 게임은 님이 지금까지 한 국산 게임과 다르고요'라는 개소리부터 씨부리는 이들의 출입을 금함.
05년 전반기 동안 사람이 없어 엄청난 침체기(아니, 아예 레이드를 못 가던 날도 수두룩했던)였던 우리 길드의 레이드는 방학을 맞아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 게헨나스에서 좌절하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파죽지세로 가르를 잡고 게돈을 잡고 샤즈라를 잡고 청지기까지 일직선. 그리고 오닉시아도 계속 잡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라그나로스는 빡셌고, 결국 라그는 못 잡은 상태에서 방학이 끝났다. 학기가 시작하면 인원 수가 어찌 되려나 걱정을 했는데 예상외로 괜찮았다. 사람 수가 줄긴 했지만 역시 피크 타임 때는 공대 인원 40명을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기왕 계정도 끊긴 김에 중간고사 기간 2주, 중간고사 끝나고 1주 동안 접속을 안 했던 거다. 사실 그동안 B&W 2라든가 이것저것 했지만 그래도 와우가 빨아먹는 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니.
하지만 돌아와 보니 길드 레이드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이유는 간단. 오피서가 없었다. 길마형은 개인적인 문제로 접속을 안 했고(나는 길마형이 접속 안 하는 줄 몰랐다. 알았다면 중간고사 끝나는 날부터 접속했겠지), 다른 오피서형(실질적인 부길마)은 아~주 옛날부터 직장 특성상 접속율이 좋지 않았다. 사실상 레이드 전력으론 논외. 1명은 해외로 갔고 1명은 명함만 오피서. 그나마도 이젠 와우 접었지만.
하지만 사실상 길드의 레이드는 길마형 혼자 하고 있었다. 공대 결성, 몹 풀링과 그로 인한 평몹 리딩은 내가 했지만, 네임드 공략, 인원 파악(아이템, 특성 등등)과 공대 클래스 조정,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 아이템 분배 등등은 길마형이 했다. 그러니, 길마형이 없어지는 순간, 길드 레이드에는 리더가 없어지고 레이드는 엉망이 된 거다.
3주만에 들어가보니 레이드하는데 인원이 20명. 물론 이렇게 되면 레이드 포기다. 일주일 동안 일요일, 월요일 제외하곤 다 레이드 시작도 못해봤고, 그나마 일요일에도 35명도 넘기지 못했다. 중간에도 많이 전멸하고, 월요일엔 30명으로 게돈에서 4번 전멸했다. 하! 30명 좀 넘는 공대의 거의 절반이 힐러인데 마나가 없어서 힐이 말라서 전멸했다. 참... 삐리리하구만.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짜증내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3주 만에 참 많이도 길탈했다. 길드엔 있더라도 외부공대 뛰는 인원이 엄청 늘었고. 물론 레이드에 맛들였고 아이템 좋은 거 먹기 시작했으니, 그 이상을 원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만, 이렇게 안면 씻고 다 가버리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길드가 잘 나간다. 레이드 잘 나가고 아이템도 잘 준다. 이럴 땐 구름 떼처럼 몰려들더니, 길드가 어렵다, 길드 레이드가 잘 안 된다, 이러니 썰물처럼 좌악 빠지는거다. 후... 이기심이란. 아니, 길드란 이름 자체는 중세 시절 이익 집단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 길드는 포인트제도 도입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간에 의리와 정을 중요시하는 길드다. 그래서 "처음 참여하는 길원에게 에픽 잘 준다"는 소문이 퍼져서 첫 에픽 먹고 길탈하려고 오는 놈도 있었을 정돈데...
많이 아쉽다.
이끄는 리더가 없는 조직이 원래 이렇게 약한 거 몰랐냐고? 안다.
사람들이 원래 이렇다는 거, 이기적인 거 모르냐고? 물론 안다.
다 안다. 다 아는 거지만, 한두번 겪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당할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 가슴이 아프다. 즐겁게 레이드 뛰고 즐겁게 채팅하던 이들이라도, 이렇게 한 순간 돌변한다는 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이 저러는 걸 보면서 "내가" 저렇게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 점점 저렇게 변해간다는 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