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5. 10. 1. 19:52

진성 오타쿠의 방. 오오 이 엄청난 포스란. 순간 압도당했다.

  줄여서 흔히 일드라고 부르는 일본 드라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접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특유의 과장 때문에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전차남의 이야기는 워낙 흥미로워서 어떻게 즐길 거리가 없나 찾다가 이 11화짜리 드라마를 찾아서 보게 되었다.

 처음엔 정말 표현할 말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찌질거리는 전차남을 보면서 이걸 참고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고 스스로 변해가는 전차남을 보면서 나중엔 나도 모르게 전차남을 응원하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한 남자가 여성에게 반해서, 스스로 노력해 그 사랑을 쟁취한다는, 정말 흔하고도 흔한 이야기지만, 그 "전"과 "후"의 엄청난 갭, 하지만 그게 오히려 당연하게 보이는 전차남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익명 게시판의 무수한 사람들의 응원들. 이것이 이 전차남 이야기의 매력이 아닐까.

 물론 여주인공도 예쁘고, 주변 인물들도 다 개성있고 아주 재미있다. 여주인공의 회사 선배와 친구의 만담이라든가 사쿠라이의 삽질이라든가… 그리고 이쪽에 밝은 사람이라면 드라마 내내 쏟아지는 엄청난 오타쿠들의 모습과 그 문화, 그리고 까메오로 출연하는 유명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 난 후자는 거의 못 알아보고 설명을 보고서야 그런갑다 했지만 전자는 거의 첫눈에 모조리 다 알아봤다. …사실 내가 한국에 살아서 그렇지 일본에 살았다면 사실상 게시판의 오타쿠 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하긴 하다; 아니 사실 내 모습이 전차남 위에 투영되어서 초반에 보기가 그렇게 싫었을지도.

 음, 하지만 결국 여주인공은 나름대로의 트라우마가 있긴 했으나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예쁜 척"만 하는 인형에 가까운 수준의 캐릭터였다. 거의 똑같은 표정에 입만 웃었다 말았다 눈물이 떨어졌다, 인상 찡그리는 것조차도 하나도 없고. 전차남의 엄청난 변화에 대비되어 더 강조가 되는 듯. 차라리 그 친구처럼 오타쿠를 싫어하고, 그걸 전차남이 극복하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이런 "나데시코(혹은 베르단디)" 캐릭터라니, "이런 여자 아니면 연애는 꿈도 꾸지마"란 얘기로 들리는 건 내 피해 망상일까.

 하여튼 재미있었다. 보는 동안 많이 웃었고, 많이 감동했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드라마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움직인 건 정말 처음이다.

 덧글 :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얘기도 많던데, 글쎄. 넷에는 성별도 없고 나이도 없고, 그리고 진실도 거짓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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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ocean.egloos.com BlogIcon 수시아 2005.10.01 20:06  Addr  Edit/Del  Reply

    오타쿠들이 닿지 못할 '환상'을 표현하는데는 에르메스만한 캐릭터가 없지요.
    지극히 순수하고 착하고... 현실에 이런 여자 있겠어요? 다 환상이지.

    • Favicon of http://dgdragon.info BlogIcon DGDragon 2005.10.01 22:30  Addr  Edit/Del

      몇년전에 일본에서 이슈가 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중학교 교사가 된 여성이 있었는데, "아가씨"로 키워져서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질 안 좋은 중딩 하나가 이 선생에게 대쉬를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 사귀게 됐는데... 중딩 목표야 뻔하죠. 피임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러다가 결국 임신을 해서 들통이 났는데, 중딩이야 행동이 빤하지만 이 아가씨가 정말 중딩을 사랑한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애 낳는다고 난리를 쳤답니다. 그래서 화제가 되었죠. 세상에 이런 여자 있냐고... 결과야 물론 미성년자 법에 의한 여자 쪽의 구속입니다만.

      "정말로 아주" 없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만, 저하고 마주칠 가능성이야 없겠죠. 환상이라고 하시니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ver7.byus.net BlogIcon 지훈 2005.10.01 20:27  Addr  Edit/Del  Reply

    실화에요~!

    영화나 소설로 보면 주인공이 드라마보다는 덜 호들갑..

    • Favicon of http://dgdragon.info BlogIcon DGDragon 2005.10.01 22:34  Addr  Edit/Del

      저희 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없지만, 일본에선 어쩌다 흘린 개인 정보를 추적해서 상대방을 살해해버린 사건이 몇 건 있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일본이지만, 때문에 웹의 익명성은 더더욱 더 철저해졌죠.

      전차남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게시판은 물론 익명 게시판입니다. 거기서 전차남이 올린 글과 댓글들이 모여 책이 되어, 전차남 이야기의 원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차남이 올린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낚시글이라면 어떨까요. 사실은 글 올린 사람이 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니면 작가 지망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게시판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글 실력을 테스트 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이 이야기의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화라고 그냥 믿기는 좀 그렇군요.

  3. Favicon of http://raonsky.com BlogIcon 라온수카이 2005.10.01 21:24  Addr  Edit/Del  Reply

    덴샤오또꼬...
    실화니 뭐니를 떠나...
    재밌던데요.그걸로 됐죠 뭐. ^^

  4. Favicon of http://www.571bo.net BlogIcon 571BO 2005.10.01 22:06  Addr  Edit/Del  Reply

    드라마는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소설 구매를 예정으로 두고 있습니다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dgdragon.info BlogIcon DGDragon 2005.10.01 22:35  Addr  Edit/Del

      그거... 번역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2ch 언어도 DC체 만큼이나 대단하다던데.

    • Favicon of http://www.571bo.net BlogIcon 571BO 2005.10.02 16:20  Addr  Edit/Del

      근데, 저 위에 있는 '오타쿠式' 방 사진... 멋지군요... -_-b (원츄.) 언젠가는 저렇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돈이 어딨누. 맞아 죽고 싶누. 엄마한테 맞을 각오 해야...)

    • Favicon of http://dgdragon.info BlogIcon DGDragon 2005.10.02 16:45  Addr  Edit/Del

      저는 뭐랄까 상당한 압박을 느꼈는데;

    • Nairrti 2005.10.04 10:19  Addr  Edit/Del

      번역 굉장히 잘 됐습니다. 통신어투라거나 이모티콘 표현도 적절하구요.

    • Favicon of http://dgdragon.info BlogIcon DGDragon 2005.10.04 17:15  Addr  Edit/Del

      네... 가능하면 한 번 구해서 봐야겠네요.

  5. 벤시라 2005.10.03 10:21  Addr  Edit/Del  Reply

    각종 피규어와 프라모델로 가득한 오타쿠가 사는 방....

    저렇게 모을 여력이 없더라도

    저 안에 있는 것들 반이라도 만들어봤으면 하는

    프라모델을 만들때의 손맛과 집중력이란....

  6. 아스 2005.10.04 05:33  Addr  Edit/Del  Reply

    외박 나갔을 때 마침 1화 시작해서 형이랑 같이 봤었는데 결국은 둘 다 참지 못하고 도중에 꺼버렸음;;; 메모리스틱 사거든 PSP용으로 인코딩 된 버젼이나 받아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