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5. 18. 23:35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 이익이 이타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말을 하며, 이익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짓말의 규모도 커진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국민연금이 아닐까 하지만 뭐, 내가 연금에 대해 아는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일단 패스하고,
그러한 거짓말을 막기 위한 무기는 숫자였다. 많다, 적다 등등의 애매한 단어는 "객관"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떠밀려 사라지고, 중요하거나 큰 일의 경우 일에는 대부분 말 대신 숫자가 사용된다. 생텍쥐페리가 "어른들은 숫자만 좋아해"라고 어린 왕자에서 말했지만, 공돌이에게 정의는 Justice가 아니고 Definition인 것처럼 사고 방식이 한 번 숫자 위주로 굳어지면 고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숫자를 그냥 나열해놓으면 읽기가 어렵다.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으면(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이런 경우가 점점 더 흔해진다) 수만~수백만개에 달하다 보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게 필요해졌다. 그게 통계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눈에"다. 숫자를 줄이다보면 고의가 아니라도 왜곡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뿐더러, 숫자를 속이지 않더라도 계산 방법이나 표시 방법에 약간의 손질만 더해줘도 한 편의 멋진 구라가 탄생한다.
통계를 위한 준비단계부터 왜곡은 시작한다. 전화 설문조사는 전화가 있는 집에만 가능하고, 역에 가서 하면 역에 갈 일이 없는 사람에 대해선 알 수 없다. 환경단체에서 조사하면 다들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이 되고, 기업에서 조사하면 다들 경제전문가다. 조사대상이 2명 있다면 조사원은 보통 자신에게 우호적일 것 같은 사람부터 말을 건내게 마련이다.
그리고 숫자들을 모아 계산하는 것도 어느 쪽을 기준으로 잡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 직원 9명의 월급이 100만 원이고 사장 1명의 월급이 1000만 원이다. 그럼 사내 전 직원의 월급 평균은? 190만 원. 회사는 실적이 나빴던 해를 기준으로 올해 장사 안 되니 봉급 동결하자고 하고 노동 조합은 실적이 좋았던 해를 기준으로 올리라고 아우성친다. 미국의 두 단체가 같은 해의 한 가구 평균 소득을 각각 3,700 달러 및 5,000 달러로 발표했다. 전자는 모든 가구의 소득을 가구 수로 나누었고, 후자는 모든 인구의 소득을 인구 수로 나눈 뒤 그 해 한 가구 평균 인원인 4.6명을 곱했다.
수치를 표시하는 그래프가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순이익이 310만에서 330만으로 올랐다 하자. 오른 양은 그럭저럭이지만 밑둥 300만을 잘라버리면 10만에서 30만으로 세 배 정도 뛴 것처럼 보인다. 임팩트가 적다면 세로 길이를 늘려주자. 엄청난 높이차가 보는 이를 압박한다. 차이가 약간 더 크다면 그림으로 표시해준다. 2차원으로 돈주머니를 그릴 때 2배 차이나는 돈주머니를 곧이곧대로 가로세로 2배 사이즈로 그린다. 결국 그림의 크기는 4배로 보인다. 3차원으로 그려주면 효과는 2차원의 2배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순 없다. 자기가 조심하는 수 밖에. 이익집단들이 숨기고 싶어하나 숨길 순 없어서 작게 써둔 글씨들을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머릿 속에서 그래프를 재구성하는 것만이 착각과 오해를 막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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