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6. 8. 20. 20:00
  눈물을 마시는 새 - 전4권  이영도 지음
로 한국 판타지소설계의 정상에 선 이영도의 신작이 출간됐다. 이전 작품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제목은 '백성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마시는 왕'을 의미한다.

미리니름 주의.

이영도는 모든 종류의 소설가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동시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작가다.

그는 글빨이 좋다. 소설이란 결국 이야기인 것,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아무리 무슨 상을 받고 무슨 베스트셀러라도 내가 재미없으면 그만. 하지만 이영도 작가의 소설은 뭐든지 재미있다.

사소한 배경 묘사부터 심리적인 이야기, 시시한 농담 따먹기부터 문단, 권별로 나가는 거대한 이야기까지, 그 모두를 흥미롭게 전개해나가는 솜씨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독창성 있는 설정에 평상시의 상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여러 언급들이나 계속 등장하는 반전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의 이야기다. 드래곤 라자와 단편집을 제외한 모든 이영도 소설은 위에 쓴 대로의 장점과, 또 하나의 공통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찜찜함'

이 찜찜함이란, 이해불가능에서 오는 찜찜함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마치 학생을 앞에 둔 교사처럼, 처음에는 조금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을 해준다. 등장 인물들은 서로에게 설명하고 서로에게 해설하고 서로를 이해시킨다. 정말 쓰잘데기 없이 길다고 느끼면서 읽다 보면, 등장 인물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설명이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준다. 하지만 절정 - 결말 부분에 가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줄어든다. 인물들은 그저 감탄하고 놀라워하고 화내고 행동할 뿐이다.

그러다 끝. 그래서 나는 당황해서 방황한다. "뭐야 이거?"

거의 중후반부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결말에 이르는 부분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알 수 없다. 그들은 뭘 깨달았고 뭘 결심했고 도대체 어떻게 움직인 건가.

눈마새에서 보면, 거의 막판까지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고 있었다(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 나늬와 보늬? 나늬와 보늬가 무엇인지 설명이 본문에 거의 처절하리만큼 없는 상태에서 도 닦는 승려가 던져주는 화두처럼 나늬와 보늬를 운운하면 뭘 어쩌란 말인지. 그 시점에서 내가 나늬와 보늬란 것에 대해 가진 지식은 "모든 종족에게 미인으로 보이는 어떤 것" 뿐이었다. 그게 케이건 드라카에겐 무슨 의미가 있고,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무슨 영향을 미쳤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은 다 뭔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들은, 읽었고 기억은 하지만 개연성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만약 작가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결말"을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중간에 그렇게 자잘하게 "오해를 할 수 없도록" 해놓고 막판에 가서 방관한다면 누가 납득할까...

이것은 후치가 막판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데 열성을 다한 드래건 라자나, 아예 설명할 필요가 별로 없는 단편을 제외한 그의 모든 소설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정말 자괴감을 느낄 정도. 재미가 없거나 작가가 글을 못 쓴다고 판단했다면 그냥 냅두고 잊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텐데 그걸 짐작조차 못하는 거다. 그게 정말 답답한 것.

어쨌든 눈마새를 다 읽었다. 그리고 퓨처 워커와 플라리스 랩소디에 붙였던 분류판을 눈마새에도 붙였다. "재미는 있으나 이해 불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