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4. 11. 25. 19:35
  예절은 공포에서 비롯하였다. 서양의 악수도, 자신의 오른손에 검이 없다는 증명에서 시작한 것이다. 권력, 금력, 무력 등 인간이 스스로 만들고 숭배하는 3대 힘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예절은 복잡해진다. 왜? 그런 곳에서 실수로 타인의 적이 되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파멸하기 때문이다.

  넷에서의 예절은 그 특수성 때문에 중요하다. 모든 교류가 바디 랭귀지 없이 글자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오해와 곡해가 잘 생기고, 한 번 선입견이 생겨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바람 부는 날 한강 고수부지에서 연장 들고 만나지 않는 한.

  그리고 필자는 예절 교육을 굉장히 엄하게 받은 편이라, 넷이고 실제고 '알고 있는' 예절은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실제로 지금까지 딱딱하다, 거리감 느껴진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_-) 버릇 없다, 예절 모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모 사이트에서 운영자와 싸울 때 한 번 제외하고. =_=

  하지만 반대로 그 예절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 안 친해요'의 표식인 것 같다.

  필자에게 가장 대표적인 건 반말과 존대다. 필자는 나이가 많든 적든 일단은 무조건 존대다. 설사 저쪽이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존대말을 쓴다.

  그리고 친해져서 서로 좀 알게 되면 그때에야 동의 얻고 말을 놓는다. 물론 나이가 10년 이상 차이나면 무리겠지만 아직은 그런 분 못 뵈었고... 지금 가장 친한 애들도 전부 반말 패밀리.

  필자가 존대말을 쓴다는 건 별로 안 친하다는 뜻인 동시에, 언제 고개 돌리고 상대 안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뭐, 이건 특별하지도 않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지만.

  필자와 충분히 친밀도가 있는데도 필자가 상호 말높이에 대한 얘기를 안 꺼낸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1. 사실은 필자 쪽에서 인지도가 없다. '뉘셈?'
  2. 끌어들일지 말지 고민 중이다. 다른 쪽에 방대한 인간관계를 구축한 분이라면 뻘쭘할 뿐.

  왜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히 늘어놓냐 하면, 물론 말 놓고 싶은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타이밍과 용기 뿐. 역시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 변화를 위한 말을 꺼내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사랑 고백보단 쉽겠지만.

'잡담 >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욕 증진을 위한 헌혈 한 방.  (2) 2004.12.31
통신어체의 강력한 전염력  (0) 2004.12.23
한겨울의 미니스커트.  (2) 2004.11.23
단물을 다 빼먹으면 남은 건 버리는 법.  (2) 2004.11.05
맞춤법 이야기  (2) 200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