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온라인이 신이 내리신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그 게임을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올드비" 딱지를 붙인 뒤 스스로 우월감에 쩔어, 고개를 높이고 목을 뻣뻣이 하여 타인을 깔보고, 관심법이라도 쓰는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린저씨'라 판단하여 '이 게임은 님이 지금까지 한 국산 게임과 다르고요'라는 개소리부터 씨부리는 이들의 출입을 금함.
어디에선 엄청난 칭찬, 어디에선 엄청난 욕을 먹는 소설. 엇갈리는 평가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욕먹을 소설도, 그렇게 칭찬 받을 소설도 아니고 그냥 그런저런 시간 죽이기용 책이라는 느낌. 어쩌다 베스트셀러를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찰에게 쫓기나 긴장감이 없고, 반전이 있으나 예측이 너무 쉽고, 주인공끼리 맺어지나 로맨틱하지 않고, 음모론과 비밀의 종교단체가 나오나 단순한 언급에 그친다. 남은 건 성배 이야기 뿐인데... 구라를 치다가 말아서 뭔가 찜찜하다. 성당기사단이 어떻게 "족보"만으로 부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 족보에 유럽의 금광분포도라도 별첨됐나?
사회가 산업화하면 과학의 발달로 출산/사망 비율이 다산다사에서 다산소사가 된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경쟁이 심해지고 인간 개개인의 가치는 떨어진다. 경쟁에서 이기고 높은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자식에게 들어가는 부양/교육비는 증가하고, 때문에 사회는 소산소사로 접어든다.
르네상스는 페스트가 유럽 인구를 다 쓸어가서 생겼다(다른 이유도 많지만 일단 제끼고). 재산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줄어 각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줄었고 그 여유가 놀이 문화를 요구했다. 게다가 돈도 있었고. 반대로, 다산소사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여 떨어진 개개인의 가치는 별로 좋은 꼴을 보여주진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것처럼.
하지만, 자본주의의 돈맛을 본 사람은 "착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노예"다. 노동자를 노예화시킨다면 급료 대신 폭력으로 그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고, 수익율은 수십수백배로 뛰어오른다.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노예는 없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하지만 지금도 가끔 소식이 들리지 않는가? 붙잡힌 소녀(아니면 빚에 팔렸거나), 매춘 강요, 아무리 일해도 늘어만 가는 빚, 폭력과 강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한국에서도 이러한데 다른 산업화 중의 개도국은 어떻겠는가.
이 책에선 태국의 매춘 소녀들, 인도의 농부들, 브라질의 목탄 노동자들, 파키스탄의 벽돌 노동자들, 그리고 모리타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들의 불행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쓴대로 이 장사에선 엄청난 이익이 나오고, 그 돈은 정치인과 공무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따라서 국가 권력과 경찰이 노예 소유자를 옹호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상품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선진국의 대기업들이므로, 숫자로만 볼 경우 엄청난 경제 성장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돈이 되기 때문에 노예를 만들려고 하고 부리려고 한다. 따라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회사에 대한 압력을 가해 돈줄을 끊어야 하고 노예가 된 이들에 대한 지원(특히, 교육)을 하여 다시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나라는 1세계도 3세계도 아니지만, 깨끗한 것도 아니다. 느낀 바가 많다.
누구 말따나마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 그리고 그 예산은 세금으로부터 온다. 돈 있는자 흥하고 돈 없는자 망하리. 일반적인 세계사의 흐름에 세금이 미친 영향이 궁금해 이 책을 펼쳤으나, 그다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세금에 얽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많은 에피소드들을 다루고는 있으나, 이러이러한 세금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그냥 끝나버리고, 자세한 분석이나 "그 다음 전개"가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주는데는 실패했다. 이건 그냥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리고 쓸모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세금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면 난 것이지, 대치양상, 양측의 전술,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포로가 되었는지는 알아서 뭣하리. 본문에 주장이 너무 많은 것도 좀 그렇다. 적은 세금을 옹호하는 건 좋으나 직접적인 주장이 곳곳에 있어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왼쪽으로 많이 기울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사료는 많이 모였으나, 소화가 덜 된 듯 하다. 소화능력에 자신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남미의 잉카 문명을 스페인이 무너뜨린 사연이 가장 인상 깊었다.
덧글 - 서문에서, 19C 영국에서 관세와 소비세를 줄였으나 덕분에 거래량이 늘어나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 것을 예로 들어 세금을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솔직히 찬성하기 어렵다. 당시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거기서 엄청난 무역량과 이익이 발생했으나, 지금 한국엔 식민지가 없고 만만한 봉도 없다. 아니면 당시의 번영이 식민지와 관계가 적거나 없다는 증거라도 있는 걸까? 반례로, 미국의 경우를 보면 20C 후반 세금 줄일 때마다 좋을 꼴을 못 봤다. 지금 현재 부시 정부조차도. 오히려 클린턴 시절 세금을 늘렸을 때 경제가 호전되었다. 그리고 기업과 국민의 부담을 약하게 하는 것과 부패의 감소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의문이 많이 남는 머리말과 맺음말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침략, 정복, 약탈의 역사다. 산업화의 시작부터 정보화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그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방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더욱더 철저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본주의의 화신, 미국의 역사는 곧 자본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흑인들, 아메리카의 인디언, 한국, 베트남 등의 아시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의 중동. 끝없는 수탈과 착취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특히 20년 전 미국이 중동에서 CIA를 통해 한 짓거리들로 인해 오늘날 9.11이 터졌다거나, 왜 엉뚱한 이라크가 두들겨 맞는지 등의 언뜻 보기엔 잘 알 수 없는 국제 정세가 과거와의 인과 관계로 이어져 한눈에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600페이지(5XX 페이지였나?)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이,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책.
* 이하는 레포트로 낸 글이다. 확실히 말하건데 읽지 마라. 눈버린다. 솔직히 이 책 자체에서 받은 느낌이란 백년 만에 30%가 오른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격한 상승이 충격적이란 거 뿐이었고, 그 상태에서 A4 5장 채우기 위해, 성향을 알기 어려운 교수의 눈 밖에 나지 않을 글로 대충 쓰다 보니 결론이 완전 초딩 논설문 쓰듯 나와버렸다. 환경 오염의 경우 솔직히 국가에서 적극적이고도 강하게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기업 문화는 자유가 아닌 방종 그 자체다. 공공의 자연을 개인이 수탈하여 배터지게 처먹고 있는 동안, 돈과 힘 없는 자는 그 오염을 죽도록 먹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애들이 백년 동안 신나게 뿜은 이산화탄소로 인해 태평양 섬나라들이 가라앉고 있고, 가난한 그들은 이제 대륙으로 나가 기업인들에게 착취당해야 한다. 힘 없으면 뒈지는 그런 천민 자본주의가 미국이 외치는 세계화, 국제화, 글로벌의 결과다. 얼마나 이러고 있을 건가? 파이를 키웠으면 나눠먹어야지 언제까지 키울건가? 그 파이에 부자가 질릴 때까지?
환경과 사회 레포트
도서명 : 기후의 역습 지은이 : 모집 라티프 지음, 이혜경 옮김 출판사 : 현암사 펴냄
들어가며.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한국만 하더라도 여름의 최고 기온 기록이 매년 갱신하고 있으며, 강이 얼어붙는 기간은 해마다 짧아지고 있다. 그리고 각종 동식물의 서식지는 매년 북상하고 있어, 몇 십 년 뒤엔 남쪽 지역은 아열대 기후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리고 해결 방법은 없을까?
지구의 평균 기온은 15℃정도이다. 하지만 대기의 효과를 무시하고 태양과의 거리로만 직접 계산해보면, 지구의 예상 기온은 영하 18℃가 된다. 무려 33℃가 높은 것이다. 이 엄청난 열량은 어디에서 오는가? 답은 물론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배웠던 온실효과다. 태양빛을 지구 표면이 흡수하여 지표면에서 가까운 대기층을 데운다. 지표면은 적외선을 방사하고, 이를 수증기나 이산화탄소 같은 미량가스들이 열선의 일부를 흡수하여 다시 지구 표현으로 되돌려 보낸다. 일단 들어오는 건 통과시키지만, 열이 밖으로 나가는 건 막는 것이다. 그럼 기온은 무한히 올라가는가? 그건 아니다. 올라가는 기온은 물을 증발시키고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는 하늘에서 응결하여 비가 되어 내린다. 이 순환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열은 물의 위치 에너지 변환에 소모되어 지구의 대기는 일정 기온을 유지하게 된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다면 비가 더 많이, 자주 내리게 되며, 그 반대라면 더 적게 내려 지구의 기온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하게 된다. 순환하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저 온실효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대기 중에 0.038% 밖에 없는 이산화탄소인데, 이 이산화탄소도 순환 과정을 거친다. 직접적으로는 바닷물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의 대류로 해저에 침강하여 다른 퇴적물과 함께 암석이 되며, 간접적으로는 탄소를 몸 안에 가진 해양생물과 지상의 동식물들의 사체가 마찬가지로 퇴적하여 지구의 안쪽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지질학적 과정에 의해 지표면에 솟거나 화산 폭발 등으로 다시 대기 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지구의 형제 행성인 화성과 금성을 보면, 지구의 위치와 조건이 얼마나 절묘한지 쉽게 알 수 있다. 금성은 태양빛이 너무 강렬하여 수증기가 포화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대신 온도가 계속 올라가, 결국 물 분자는 수소와 산소로 쪼개진다. 가벼운 수소는 우주 공간으로 사라지며, 남은 산소는 다른 분자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이 되어 대기 중에 계속해서 머물게 된다. 따라서 이산화탄소의 순환 역시 없다. 화성은 반대다. 지각운동이 없어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늘어나지도 않으며, 때문에 물이 증발할 온도에 이르지 못해 어떤 순환도 이뤄지지 못한다. 화성의 물은 그냥 얼어붙어 있을 뿐이다.
위에 쓴 사항 중에서 인간이 간섭한 부분은 이산화탄소의 대순환이다. 과거의 생물이 여러 가지 사정을 안고 지표 속으로 사라져가 지질학적 과정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와 석탄이 되었지만, 이것을 인간이 끄집어내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화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던 100년 전만 해도 지역적인 공기 오염만 걱정했을 뿐이었지만, 이제 사태는 심각해졌다. 인간은 매우 조직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석유가 나오는 곳이라면 전 세계의 어디든 땅을 파 석탄을 캐내고 땅에 쇠기둥을 꽂아 석유를 뽑아 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전 세계에 운반하여 불태우고 있다. 다른 무수한 오염물질들도 대기 중으로 퍼지고 있으며… 이산화탄소도 대량으로 나오고 있다. 그 직접적인 증가는 역시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산업화 이전 280ppm(0.028%)이었던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최근 370ppm(0.037%)까지 증가했다. 무려 30%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0.6도 상승했다. 이러한 기온 변화를, 일반적인 기후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이 간섭하지 않아도 지구의 기후는 끊임없이 변하며, 이러한 사항들이 사실은 그런 변화의 일부가 아닐까 하고. 그러나 여러 탐사 기록과 기후 모델로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모든 모델에서 대체로 2000년을 기준으로 기후변동 가능 폭을 돌파했다. 이것은 절대 자연적이지 않다. 그리고 원인의 80% 이상은 인간의 활동이다. 혹자는, 0.6℃는 지구의 온실효과 33%의 2%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유치한 숫자놀이에 불과하다. 앞서 썼듯이 지구의 물 순환 시스템은 항상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거대한 바다 또한 항상성 유지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평균 기온은 천천히 오르고, 천천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벌써 0.6℃나 오른 것이다. 겨우 100년 만에. 그리고 0.6℃ 오른 기온의 효과를 우리는 두 눈으로 매년 보고 있다. 녹아내리는 만년설과 빙하, 여름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무더위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죽는 사람들,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 우리나라만 해도 전국의 더위 기록과 그로 인한 최대 전력 사용량 기록 갱신을 매년마다 보고 있지 않은가. 기상 이변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더 빈발하고 있고 그 강도도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하루 동안 870mm라는 강우 기록은 분명 최고 기록이지만, 언제 다시 갱신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까지의 기록이 0.6℃이며, 온도의 상승폭은 해마다 올라가고 있다. 자제가 없다면, 앞으로 100년 내에 지구의 기온은 5℃ 이상 오를 것이다. 자연계의 숫자 변화를 일반적인 다른 숫자 보듯이 보면 곤란하다. 그것은 성질 급한 사람이 화를 참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가는 숫자에 비례한 반응을 보여 주겠지만, 일정 한도를 넘어서 화가 폭발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지금의 추세대로 화석 연료를 태우게 되면 2100년에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1000ppm이 되며, 급격한 기온 상승과 녹아내리는 빙하 등의 원인으로 대서양을 거쳐 유럽으로 엄청난 열을 전달하던 멕시코만 난류가 멈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기온은 뚝 떨어져, 겨울엔 엄청나게 춥고 여름엔 엄청나게 더운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한순간에 바뀌게 된다. 그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을 중단하면 일은 바로 해결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저질러 버렸다. 불가능한 얘기지만, 설사 기적이 일어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가 된다 하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구의 기온을 계속 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포기한다면 지구의 기온은 그야말로 폭등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온도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 아예 포기하란 의미는 아니다. 한 번 나온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서 100년은 머문다고 한다. 이산화탄소가 옛 수치로 돌아간다 해도 한 번 요동친 기후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의 사태를 각오하고, 예측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온실가스가 많은 것이 문제이므로, 이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가스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잡기 어렵고,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도쿄의정서가 그것인데, 현재 발효한 상태다. 이에 의하면 각 국가는 2012년까지, 90년 수준보다 평균 5.2%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인 선진국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단점이다. 각 국가가 배출한도를 갖고, 이에 미달할 경우 잉여분을 파는 배출권 거래제도의 경우 개도국이나 기타 환경 사정이 좋은 국가가 그렇지 않은 선진국에 배출권을 팔 것이 뻔하고, 아니면 선진국에서 경제 문제를 빌미로 암중에 판매를 강요할 수도 있다. 선진국이 다른 선진국에 투자하여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분을 투자 국가의 감축분으로 인정해주는 공동이행제도나, 선진국이 다른 개도국에 투자한 분량을 선진국의 감축분으로 인정해주는 청정개발체제 역시 마찬가지. 삼림, 해양 등에 흡수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배출량에서 제한다는 순배출의 경우엔 일종의 말장난인데, 식물이 탄소를 고정한다 하여 심더라도, 탄소의 고정은 정확히 그 식물의 무게만큼 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땅에 묻혀야 고정이 지속된다. 베어내 종이로 만들어나 목재를 활용한다면, 그 뒤처리가 소각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도루묵이 되어버린다. 결국 선진국들은 이미 갖춰진 생활양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가진 능력을 총동원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그만큼의 힘이 없는 개도국이나 중진국들은 선진국이 외면하는 그만큼을 메꾸기 위해 희생당하게 된다. 게다가, 세계 제 1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 미국은 교토의정서를 탈퇴해버렸다. 현재 세계 경제는 중앙집중적인 화석 경제로 이루어져 있고,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이야기는 그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 바로 시작하여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21C 끝 무렵의 지구는 인류가 적응해온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가 현 실태를 인식하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당장은 구체적인 감축의무를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10위권 내외를 들락날락하는 에너지 소비국이며, 특히 에너지 소비율 증가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어 언제 감축 의무가 부과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의 신재생 에너지 기술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내수 시장은 거의 공백 상태이며, 다른 많은 나라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과도한 에너지 낭비와 여러 공산품의 과소비를 줄여 에너지 생산과 제품 생산을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통해 화석 연료를 대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내가 학교에서 배운 생태계의 구성요소다. 그럼 기생충은 어디에 들어갈까. 미분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다면 미분류로 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잠깐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러시아의 툰드라에 있다. 때는 겨울이고, 눈보라치는 새하얀 설원을 순록 떼가 달리고 있다. 그 뒤를 한 무리의 늑대 떼가 쫓는다. 순록 떼에는 여러 개체가 있지만 쳐지는 것은 늙은 것과 병든 것이다. 늑대 떼의 수장은 덩치가 더 크지만 잡기는 더 쉬운 병든 것을 택한다. 하지만 그 "병든" 것은 사실 늑대를 최종 숙주로 하는 기생충의 유충이, 중간 숙주인 순록의 폐를 망가뜨린 것이다. 기생충은 순록을 죽여 최종 숙주인 늑대에게로 옮겨간다.
기생충이 없다면 어떨까. 병든 것이 사라지게 되니, 늑대가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개체는 늙은 것만 남는다. 늙은 것을 다 잡아먹고 건강한 놈을 노리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들게 되며, 결국 늑대의 개체수는 줄어든다. 건강한 순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니 평야는 초토화되고 순록은 엄청나게 굶어죽는다. 혹한의 그 땅에서 시체는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남을 것이다.
잡아먹히는 생물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잡아먹는 생물은 잡아먹기 위해 무한의 군비경쟁을 해왔다. 기생충은 그 사이에서 생태계의 순환을 좀 더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기생충은 진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생태계 전체의 관점에서야 어쨌든 기생충은 개개의 생명체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그것도 자신의 몸 속에서. 때문에 숙주들은 몸 속의 면역계를 격렬하게 진화시키고, 자신의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기생충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역시 격렬하게 진화한다. 도태되는 쪽은 죽는 것이다.
이 과정의 가장 인상적인 산물은 '성'이다. 무성 생식을 한다면 수천 수만의 자식 중 한둘만이 다른 형질을 띠고 태어나게 되지만, 유성 생식을 한다면 단 몇만 낳아도 그들의 유전자는 각각 모두 다르게 되며, 이쪽이 온갖 병과 기생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더 다양한 형질을 확보하게 해준다.
위의 예는 기생충의 역할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을 인간이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쓰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공중 보건이 고도로 발달한 도시에 모여 살고 있어 기생충의 존재를 잊고 살며, 가끔 접하게 될 때에도 평가절하하게 된다. 기생충이 걸린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며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제 3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에게 기생충은 일상이며 그들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다.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어느 쪽이 정상인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제작비만 잔뜩 들였지 재미도 없는 스릴러나 공포물을 보는 것보다, 이 책을 한 번 보라. 생태계에 드리워진 거대한 기생충의 그림자를 보라. 기생 과정의 리얼한 묘사와 몇장의 사진이,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다.
책 내용과 그 안에 등장하는 학교 이름(자유의 숲)을 얼핏 보고는 학생에게 자연을 안내해주는 학습용 소설 같은 건가 했는데 다 읽고 보니 아무래도 이거 논픽션이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이 책의 지은이(교사)는 물론 책을 읽어서 지식을 다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냥 그걸로 끝내지 않는다. 항상 뭔가를 조사하고 관찰하고 해부하여 주변의 자연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자 한다. 두더지 시체를 주워 해부하고, 바퀴벌레를 관찰하고, 곤충시체를 주워 통계를 내고, 뼈를 주워 조립해보고... 항상 모든 것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추리를 한다. 아마 한두세기 더 빨리 태어났으면 자연 과학자 한둘 정도는 그 지위를 위협 받았을 것이다.
주변에 영향이 없을리가 없다. 아이들도 해부에 동참하고 여러 활동을 하고, 학부모들도...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 살기만 해도 안 되고, 좋은 교사를 만나기만 해서도 안 되고, 교육과 취직과 돈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야 한다.
부럽다. 학생들이. 내가 아직 학생이라 그런가보다. 내가 학부모가 된다면 이 책의 학부모를 부러워하게 되려나.
...힘들게 그리신 분에겐 미안하지만 만화 자체는 그다지 재미없었다. 영화 중 1/3만이 내가 본 영화였기 때문에 그 탓인가 했지만 안 본 영화 뿐 아니라 이미 본 영화의 만화도 재미없었다. 오히려 만화 꼬랑지에 몇줄 안 되는 감상편이 더 재미있었다.
영화 보고 싶은게 분명히 있는데 비디오 대여점 가서 빌려서 비디오에 넣고 보는게 잘 안 된다. 크~ 오히려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면 될지도.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고 귀차니즘의 문제인 듯. 그렇다고 다운받아 본다는 얘기는 아니고 -_- 대여 목록 같은 걸 만들어서 주말마다 한두개씩 봐야 쓰겄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 이익이 이타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말을 하며, 이익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짓말의 규모도 커진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국민연금이 아닐까 하지만 뭐, 내가 연금에 대해 아는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일단 패스하고,
그러한 거짓말을 막기 위한 무기는 숫자였다. 많다, 적다 등등의 애매한 단어는 "객관"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떠밀려 사라지고, 중요하거나 큰 일의 경우 일에는 대부분 말 대신 숫자가 사용된다. 생텍쥐페리가 "어른들은 숫자만 좋아해"라고 어린 왕자에서 말했지만, 공돌이에게 정의는 Justice가 아니고 Definition인 것처럼 사고 방식이 한 번 숫자 위주로 굳어지면 고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숫자를 그냥 나열해놓으면 읽기가 어렵다.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으면(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이런 경우가 점점 더 흔해진다) 수만~수백만개에 달하다 보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게 필요해졌다. 그게 통계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눈에"다. 숫자를 줄이다보면 고의가 아니라도 왜곡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뿐더러, 숫자를 속이지 않더라도 계산 방법이나 표시 방법에 약간의 손질만 더해줘도 한 편의 멋진 구라가 탄생한다.
통계를 위한 준비단계부터 왜곡은 시작한다. 전화 설문조사는 전화가 있는 집에만 가능하고, 역에 가서 하면 역에 갈 일이 없는 사람에 대해선 알 수 없다. 환경단체에서 조사하면 다들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이 되고, 기업에서 조사하면 다들 경제전문가다. 조사대상이 2명 있다면 조사원은 보통 자신에게 우호적일 것 같은 사람부터 말을 건내게 마련이다.
그리고 숫자들을 모아 계산하는 것도 어느 쪽을 기준으로 잡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 직원 9명의 월급이 100만 원이고 사장 1명의 월급이 1000만 원이다. 그럼 사내 전 직원의 월급 평균은? 190만 원. 회사는 실적이 나빴던 해를 기준으로 올해 장사 안 되니 봉급 동결하자고 하고 노동 조합은 실적이 좋았던 해를 기준으로 올리라고 아우성친다. 미국의 두 단체가 같은 해의 한 가구 평균 소득을 각각 3,700 달러 및 5,000 달러로 발표했다. 전자는 모든 가구의 소득을 가구 수로 나누었고, 후자는 모든 인구의 소득을 인구 수로 나눈 뒤 그 해 한 가구 평균 인원인 4.6명을 곱했다.
수치를 표시하는 그래프가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순이익이 310만에서 330만으로 올랐다 하자. 오른 양은 그럭저럭이지만 밑둥 300만을 잘라버리면 10만에서 30만으로 세 배 정도 뛴 것처럼 보인다. 임팩트가 적다면 세로 길이를 늘려주자. 엄청난 높이차가 보는 이를 압박한다. 차이가 약간 더 크다면 그림으로 표시해준다. 2차원으로 돈주머니를 그릴 때 2배 차이나는 돈주머니를 곧이곧대로 가로세로 2배 사이즈로 그린다. 결국 그림의 크기는 4배로 보인다. 3차원으로 그려주면 효과는 2차원의 2배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순 없다. 자기가 조심하는 수 밖에. 이익집단들이 숨기고 싶어하나 숨길 순 없어서 작게 써둔 글씨들을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머릿 속에서 그래프를 재구성하는 것만이 착각과 오해를 막아줄 것이다.
이 책은 사실 그렇게 크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북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담담히 적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인식하고 있던 북한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났다. 그리고 망할 미국의 짓거리... 물론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서도, 이렇게 대놓고 했을 줄은.
이래저래 구성도 생각해보고 해서 장황하게 써보려고 했더니 아예 글을 시작도 못할 지경(내가 언제 이렇게 글을 가볍게 쓰게 되었지...)이 되어버려서, 단편적인 사실 몇개만 적어보겠다.
김일성이 물론 솔방울을 던져 수류탄처럼 폭발시킨 적은 없지만, 대항일 투쟁을 한 건 사실이다. 개마고원 및 그 북쪽 일대에서 화전민들의 마을에 기반을 둔 공산당원들은 일제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엄청난 대항일 투쟁을 전개했으며, 결국엔 일제가 "북진"이 아닌 "남진"을 결정하게 했다(그리고 그 남진이 미국에 막히자 진주만을 폭격한 것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원들의 80~90%가 조선인이었다고 하며 김일성은 그 중에서도 엄청난 세력권을 형성, 3사단장을 맡았으며 동만주 지역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 특별체포대가 따로 있었을 지경. 그리고 그 때 중국과 소련의 배신을 한 차례씩 당했고(스탈린의 대규모 숙청과 중앙아시아로의 추방, 중국도 대동소이. 토사구팽), 이 때문에 "자주 독립"을 외치게 되었다. 즉 소련의 꼭두각시도 아니었고 한국전쟁도 스스로의 의지로 일으켰다는 것(뭐 어느 쪽이든 반갑지 않기는 매한가지).
39~40년에 걸친 일제의 대토벌 작전에서 일본군은 민간인까지 대량학살하면서 공산당원들을 몰아내려했고 김일성도 이 때 소련으로 도망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권을 잡았는데, 이 때문에 남한에선 소련의 앞잡이로 알려졌다. 그렇게 보면 뭐, 일본의 박정희나 미국의 이승만이나... 소련으로 도망가기 이전의 기록이 날조라거나 사람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물론 나도 들어봤지만 글쎄? 글쓴이가 뻥친게 아니라면 증거 미비다.
그리고 80년대까지는 한국보다 낫거나 비슷한 경제력을 보유했으며(공산주의 국가에선 모든 생필품이 국가 지정가격으로 나오므로 자본주의 국가와 똑같이 점수를 매겨버리면 곤란하다), 이후로도 그렇게 떨어지진 않았다. 예를 들어 83년도 출생자의 "당시" 예상 평균 수명은 남, 북한 동일 80세였다. 97, 98년도에 그렇게 난리를 쳤어도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와 같이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 실제로도 98 -> 03년도까지 체중미달은 61% -> 21%, 영양실조 16% -> 9% 발육저하, 만성영양결핍 62% -> 42% 등으로 상황은 많이 호전되었다. 그렇다고 정상은 아니지만.
그리고 매춘이 없고, 경찰은 깨끗하며(굶주리지 않았을 경우겠지만), 아동보호, 여성지위, 무상주택, 예방의학, 유아사망률, 평균수명 측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선진국 수준이라는데 정확한 "수치"는 없었다).
그네들이 광고하는 것 같은 "지상낙원"은 아니다만, 빨갱이를 죽도록 싫어하는 "파랭이"들이 입에 거품을 무는 지옥은 아닌 듯 하다.
일단 한국엔 핵폭탄이 떨어진 적이 있다. 안 믿겨지나? 진짜다. 단지 핵탄두만 빼놨을 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실제 핵폭탄으로 수차례 핵폭탄 투하 훈련을 했다.
이 ㅆㅂㄹㅁ들은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한국 전쟁 때 한 짓거리를 보니 아주 예술이다.
한국전쟁 이전(이후도 있을게다)에 한국인을 야만인으로 생각해 입국금지, 귀화불허, 결혼금지, 토지소유 및 직업제한을 한 것은 기본이고(전국에 걸쳐 상기 제한을 한 게 아니고 지역마다 하나나 둘 정도 걸렸지만), 압권인 것이 한국전쟁 때 한 짓거리.
같은 나라, 같은 민족끼리 싸운다는 특이성을 간과한 채 들어온 그들은 피아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때문에 난민들에게 섞인 북한군이 자신들에게 총을 들이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결과는? 당연히 민간인 학살이다. 어쩌면 한국전쟁 때나 지금 이라크나 하는 짓이 50년 동안 변한게 없다. 꾸준한 무식과 무지, 만행에 감탄해야 하나?
그들은 수시로 항공 지원을 요청했으며 항공기는 "게릴라들이 숨어있는 장소" 즉 민간인 마을을 폭격했다. 소이탄(네이팜)으로. 한국 전쟁 때 집과 공장이 다 부서지고 어쩌고 하는 얘기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걸 누가 부쉈을까? 소총도 부족했던 한국군이? 명목은 일단 "남한 해방"이었던 북한군이? 미군 밖에 없지 않나? 남한도 예의상 해주고, 특히 북한 지역을 철저히 폭격했다. 읍 단위 이상 시가지는 모조리 소이탄으로 쓸어버렸고 신의주 평양은 아무것도 안 남을 정도로 폭격했다(이 문장의 단어는 정확하다. 과장이 아니다). 잿더미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소이탄의 특징은 그 화상이 절대 낫지 않는다는 것. 당한 민간인은 평생 고통에 시달렸지만 일본의 핵탄두 피해자의 친척만큼도 인정받지 못했다. 소이탄에 당하면 핵보다 덜 아프나? 평생 아픈 건 똑같은데.
기왕 하는 김에 철저히 해야지? 북한 지역의 댐도 모조리 날려버린다. 민간인의 이런 생활 기반을 부셔버리는 건 그 때 당시에도 엄연히 국제법에 위배하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무적의 미국은 그런 건 무시하시지.
당연히 민간인, 군인, 남한인, 북한인을 가리지 않는 고문 및 학살은 기본으로 시행한다. 미군이든 남한군이든 북한군이든... 오히려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게 북한군이었다.
자 하이라이트 핵. 밀리는 남한군을 도와 38선까지만 도와주자는 UN측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압록강까지 밀고간 미군은 중국군의 지원에 밀리기 시작하자 "핵벨트"를 구상한다. 20~30개의 핵폭탄을 일렬로 터뜨려 누구도 올라가거나 내려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 압록강 라인과 38선 라인 2개가 고려 대상이었고, 이 구상과는 관계없이 핵폭탄 사용 자체는 51년 4월 5일 허가가 났고 6일 재가가 났다. 폭격기와 핵탄두는 괌에 배치되었고 9월, 10월 원폭이 투하되었다. "핵탄두"만 빼고.
그 뒤론 핵탄두가 아예 한국 본토에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른다. 미국의 문건 비밀 해제 연도 제한이 일반적으로 30년이라서. 다들 알잖아? 하지만 미국의 핵 투하 대비 훈련 프로그램인 팀 스피리트 훈련을 아직도 하는 걸로 봐선 한국 본토에 있든 근처에 있든 북한군이 꿈틀하자마자 바로 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확실하다. 군대에 있을 때도 그냥 한미 합동 훈련인 줄 알았는데, 이 훈련에 왜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될 줄이야.
요기까지가 이 책의 1, 2부 내용이고, 이후론 김정일의 개인에 대한 이야기, 한국 전쟁 이후 북-남-미 관계에 대해 설명. 솔직히 현대사는 잘 모르겠어서 할 말이 없다. 아니 1, 2부에서 워낙 쇼크를 먹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나 자신의 무식에 대해선 잘 알게 되었다. 젠장.
현대 민주주의란 결국 유식한 발언을 하는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지배하는(침묵은 곧 찬성이니깐) 사회다. 공부가 필요하군.
덧글 - 핫... 다시 읽어보니 국가보안법에 걸릴 부분이 꽤 있다. 반쯤 죽은 법이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니깐 변명을 써둔다. 자유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 반자이(친일하셨던 높으신 분들을 위해 일본어도 살짝 섞어주는 센스).
한국의 무수한 대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던 IMF에도 건재했고, 그 이후로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삼성이 부럽긴 부러운가보다.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삼성 관련 책자들.
그리고 여기, 또 한 권의 책이 추가되었다. 미국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한다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소개한 바로 이 책.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제목을 따라가리라곤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미국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소개했을' 뿐이다. 제목을 보고 누구나 생각할 것 같은 '삼성'에 대한 얘기는 쥐뿔도 나오지 않는다.
왜 벤치마킹의 주체는 삼성인가? 왜 대상은 노드스트롬인가? 삼성은 언제 노드스트롬의 어떤 점을 벤치마킹해서 국내에 어떻게 적용시켰는가? 그리하여 노드스트롬은 삼성, 혹은 삼성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그 결과 삼성의 서비스는 얼마나 개선되고, 이것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 기업 경쟁력을 개선시켰는가?
라는 궁금증을, 이 책은 전혀 풀어주지 않는다. 그저 노드스트롬은 이렇다, 누가 창시했다, 정신은 이렇다, 제도는 이렇다... 주구장창 노드스트롬에 대한 소개가 절반이요, 서비스가 최우선이고, 고객을 위하고, 감동을 주니 어쩌니 하는, 서비스의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이 절반이다.
이 책은 노드스트롬의 홍보 책자인가? 아니면 서비스 기본 개념 해설책인가? 왜 표지와 제목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헛소리들만 주구장창 지껄이고 있지?
세계 최대의 비만 국가 미국. 전 인구의 1/3 가량이 과체중을 넘어 비만이라는 나라. 지금도 충분히 뚱뚱하지만, 앞으로 더 뚱뚱해질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나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물론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한 국가의 전 국민의 체질이 바뀌는데는, 매우 다양한 원인과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원인들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저가이며, 식물성이라 소비자의 거부성이 적지만, 사실 불포화 지방산의 비율은 돼지고기보다 더한 기름인 팜유의 대량 생산과 소비, 고과당 합성물질인 HFCs의 개발과 사용, 패스트푸드점들의 공격적 마케팅, 올바른 식습관 교육을 포기한 가정과 학교, 부족한 체육시간,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조사 및 분석 결과들, 한걸음 물러선 종교단체들과 정부.
특히 인상 깊은 건, 맥도널드나 피자헛과 같은 패스트푸드 회사들의 맹활약이다. 그들은 그들의 음식을 팜유로 튀겨서 내고, 거의 먹는 그대로 지방으로 가는 고과당 합성물질 HFCs로 맛을 낸 음료를 준다. 음식의 양을 더 늘리고, 돈을 그만큼 더 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학교의 급식까지도 패스트푸드로 제공해버린다. 공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 줄어 재정난에 허덕이는 학교들은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아침도 패스트푸드, 학교에서 먹는 점심도 패스트푸드, 간식도 패스트푸드를 먹고 살게 된다.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돈이다. 그들은 그들의 돈을 위해 자국민의 건강마저 도외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양은 많아졌지만, 하루 평균 서너시간에 달하는 TV 시청 등으로 인해 운동량은 오히려 감소한다.
많이 먹는 것에 대해 종교단체는 침묵하였으며, 정부기관들은 시민들의 비만에 대해 '개인이 알아서 할 일' 이라며 손을 놓는다. 식생활 연구가들은 통계자료를 잘못 분석하거나 자신들의 빈약한 지식을 과신하여,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잘못된 상식을 퍼뜨린다.
말리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권장한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그리하여 사람들의 심리적인 '리미트'가 해제되고, 미국인들은 살 찌는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배가 터지도록' 먹게 되었다. 결국 모두의 배가 공평하게 두꺼워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유의 나라 미국이므로, 상위 부유층에겐 위의 모든 말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95%의 국민들, 특히 하위 계층으로 갈수록 이 현상은 더 심화된다.
미국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근래 들어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국가의 허리살을 빼기 위해선 패스트푸드점들이 벌어들인 돈의 몇배에서 몇십배에 달하는 세금이 필요할 것이다.
읽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들을 우리나라 뉴스에서 꽤 본 것 같다. 특히 2000년의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 20대부터 4, 50대까지 전연령의 비만 비율이 30%를 돌파했다. 절대 미국에게 뒤쳐지는 수준이 아니다.
미국처럼 수습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 전에, 부디 현실 인식과 대처가 뒤따르기를.
나에게 있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기쁜 일은 그 읽음으로 인해 간접 경험을 충분히 하여,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새로운 관점은 흥미 위주 소설을 읽다 생길 수도 있고, 진지한 책을 읽다 생길 수도 있다.
그동안은 학과 공부 시 강의 내용과 진도, 공부에만 신경을 썼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교수와 시간제 강사, 연봉제 등등에 대해서 약간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경북대는 지금 한창 싸우는 중이라(사실 1년 내내 투쟁이다), 관심 가져도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의 제목은 정확한 편은 아닌데, 지은이는 대한민국의 교사가 아니고 미국의 교수다. 그리고 책 내용 또한 '교사'가 아닌 '교수'를 위한, 그것도 강의에 관심을 가진 교수를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주로 강의에 대한 이야기와 막 한국에 상륙하려는 교수 연봉제, 그와 관련한 미국의 제도에 대한 것. 1만도 안 되는 교수보단 10만에 가까운 교사를 상대로 하는게 더 많이 팔릴테니 그런 제목을 지었겠지만. 사실 교사가 봐도 도움될 것 같은 부분이 있긴 했다. 전체 내용의 한 반 정도?
지은이는 열심히 '스승의 도'를 설파하고 있지만... 글쎄. 근래 교사는 아무래도 가르친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생각 같은 것을 갖고 간다기 보단 안정적인 직장이란 면에서 인기 있는 것 같던데. 그리고 원로 교사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사실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 봐도 그랬다. 그나마 30대 ~ 40대 분들이 열정적으로 하려고 하지, 나머지야. =_=
게다가 대체로 이론적인 이야기라, 상당히 현실감이 없다. 책 내용을 대학에 적용시켜 보자면 강의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에게 교수가 다가가야 한다는 건데, 한 학기에 교수가 2개 강의를 맡으면 기본이 100명을 넘고, 교양이라면 한 강의가 100명에 가까운 경우가 흔하다. 어떻게 하란 말인지. 학생인 내가 봐도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의무교육도 아니고 자기 돈 내고 학교에 와서 자기가 공부 안 하는 건데.
물론 교수가 내게 관심 가져주면 고마울 것이다. 감동할 것이다. 눈물도 나겠지. 실제로 평균 출석인원 40명 가량의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출석 몇 번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 얼굴을 기억하고 지각한 것까지(출석 부르지 않았던 날에) 체크한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정교수는 아니었지만(일 리가 없고 일 수도 없다), 점수 깎이고도 감동.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안 하는게 당연한 거고, 하는 사람이 특이한 게 아닐까.
학생은 돈 내고 배우고, 교사는 돈 받고 가르친다.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가 겪어본 모든 공교육과 사교육의 장소는 결국 지식의 매매장소일 뿐이었다. 그것이 전부다. 순진했던 중딩 때나 '스승'을 믿었지, '스승'이라는 개념도 결국엔 '산타클로스'와 다를 게 없다. 그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개념'에 불과하며,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게 좀 늦을 뿐이다.
공부 관련 책이라면 못해도 중간을 가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대박도 치기 어려운 나라인 한국에서 잘 나가는 책인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 이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살로메 유모 이야기'.
'살로메란 사람의 유모가 본 살로메의 이야기'란 것을 제목부터 확실히 보여주는 책. 다만 살로메 에피소드는 이 책의 여러 이야기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들의 묶음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역사적 허구가 상당하여 소설급에 달할 정도인데 표지의 '에세이'라는 건 뭔지. 아니면 에세이의 정의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살로메, 예수, 네로, 알렉산더 대왕 등등의 역사적인 유명 인물들 당사자가 아니라, 그들의 친적이나 가까운 이의 시점에서(즉 그 시대 통념에서) 본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약간의 허구까지 섞어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쓰고 있다.
특히 네로 쌍둥이설이 흥미로웠다.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다만 원 역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듯. 그중에서도 마지막 지옥편이 압권으로, 악녀로 불리는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수다를 떠는데 그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기억해내느라 글에 집중을 잘 못할 정도였다.
뒷배경이야 어쨌든, 세상의 거의 모든 권력의 중점에는 '남자'가 있었다. 인류 수천년의 역사 동안 수없이 많은 왕국과 왕, 귀족 등등이 있었지만 거의 전부가 남자. 여성들은 그저 공식적인 직함 없이 뒤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을 조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왕이나,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매우 소수.
그러나,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여성의 몸으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이가 있다.
측천무후.
후궁으로 들어가 황제의 얼굴 한 번 못보다가, 황태자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고, 황후가 되고, 정치에 간섭하고, 황제가 된 뒤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황제가 된 사람.
이런 사실로도 놀라운 인물이지만, 의외로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한 악녀 정도의 이미지랄까. 물론 30년 넘게 황제를 하고 있다가 쫓겨나긴 했지만, 그건 권력을 탐하는 다른 자들의 행동이었고, 민중이 그녀의 지배를 거부했다거나 반란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 황제였을 것이다. 이 은폐는, 역시 남자들의 꼴사나운 질투일까.
작가 샨사는 이 유명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황의 일생을, 2권에 걸쳐 1인칭 시점에서 쓰고 있다. * 작가에 대한 글은 넷에 넘치니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왜 중국인 여성이 파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흘러넘치는 국내의 대본소용 환협지와는 달리, 이 소설의 1인칭은 확실하다. 작가는 없고, 캐릭터만 존재한다.
측천무후의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들, 아버지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시골 생황, 닭장 같은 후궁 생활, 조와의 만남, 열애, 출산, 그리고 권력을 쥐는 순간에서 죽는 순간까지...
그녀의 일생이, 그녀의 시점에서 펼쳐지고 있다. 읽고 있는 그 순간은, 정말로 측천무후가 된 느낌.
어렸을 때의 불교 심취, 젊은 시절 선대 황제가 죽었을 때의 절 생활, 권력을 쥐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갈구하는, 더 높은 이상향으로의 열망. 신들의 세계, 불멸, 영광의 추구.
그와 동시에 세속적인 것들, 사랑 - 황제에의 사랑, 정부들과의 사랑 - 과 권력에의 탐욕 - 측천무후 자신과 친척들의 - 이 그려지고 있다.
아아 측천무후. 대제국의 정점에 선 절대의 권력, 하늘에 닿은 다시 없는 영광. 그러나 그 끝에서 되돌아 보았을 때, 자신의 이익에 매달린 정부들과 권력에 탐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그녀는 끝없이 외로웠다. 고독했다. 정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홀로만 있을 수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세계에서 인구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숲이 넓으며, 기타 등등... 하지만 그만큼 안 쓰는 땅이 많고, 아직도 그 땅에서 서양의 문명에 동화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탄트의 저자는 어느날 원주민 부족의 초청을 받고 그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아무것도 없이 120일에 걸쳐 호주를 횡단합니다. 그들이 만약 도시에 왔다면 별종 취급을 받았겠지만... 저자가 그들에게로 갔기 때문에 저자는 무탄트로 불립니다. 돌연변이라는 뜻이죠.
대자연을 자신의 편의에 맞춰 바꿔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저자와 우리 '자칭' 문명인들을 무탄트로 부릅니다. 만약 저자가 그들을 끝까지 거부했다면 그냥 그대로 끝났겠지만... 저자는 귀와 마음을 열었고 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걸 이 책에 그대로 썼습니다.
모든 것은 책에 다 있습니다. 역자도 책 말미에 써 놨지만... 도저히 뭐라고 덧붙일 수 있는, 뭐라고 해설하거나 설명할 책이 아닙니다.
밑의 책들도 그렇지만 이것도 94년에 나온 책이라 도서관 아니면 읽어보기 힘들 듯 하군요.
뭐 잘 나가는 책 아니면 안 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한국에선 '당연히' 죽 쑨 책이지만(그래도 제가 갖고 있는 책은 무려 2쇄입니다) 미국에선 자비출판으로 시작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중엔 해외 20개국에서 동시 출간까지 하였습니다.
* 그림 덧붙이면서 다시 찾아보니 2003년에 재출간되었군요. 제가 가진 책은 희귀본이 되는건가...
제가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했던 TV 드라마(라고 해야 하나)의 원본. 91년도에 나온 책이니 13년 전이고 제가 초등학교 때군요.
1부 10권, 2부 2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푼 두푼 용돈 모아 샀는데 당시에는 비쌌습니다.
뭐 내용은 어느 한 도시의 초등학교 교사 히메나 페르난데스와 그녀의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따뜻한 이야기죠.
그러나 이 소설의 장르는... 두둥! 사실은 판타지!
여기에서의 교사는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다 같이 사랑합니다. 여기에서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의바르고, 서로를 생각해주며, 어른들이 꾸짖으면 반성할 줄 압니다. 여기에서의 학부모들은 아이에 대해 확고한 교육관을 갖고 있으며 아이들이 잘못하면 꾸짖고, 교사를 100% 믿습니다.
달력의 제일 첫 글자가 1에서 2로 바뀐 뒤부터는 더이상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지요.
아니, 사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제가 더더욱 더 빠져들었겠지요. 학교란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저는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정 붙여 본 기억이 없는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합친 '학교'가 정말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었죠.
지금은... 저는 꿈을 죽이고 희망을 꺾었기 때문에 더이상 그 무엇에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학교에는 그저 출석해서 점수만 따면 OK. 그것조차 안 되어서 요즘은 더욱 좌절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게임기를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패드도 거의 잡아본 적이 없죠. 기껏해야 태랑형 집의 DC나 아스레아 집의 DC, GC를 만져본 정돕니다. 하지만 언젠가 게임기를 살 그날을 위해(혹은 에뮬을 위해) 잡지는 열심히 사 보고 있습니다. 뭐 단순히 공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럭저럭 읽을거리가 많기도 하니까요.
뭐 비디오 게임계의 여명기엔 이런저런 잡지가 많았지만, 제가 보고 충격을 먹고 모으기 시작한 건 GameLine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단순히 비디오 게임의 소개와 공략만 다뤘던 타 잡지와 달리 이런저런 잡 지식과 특히 게임 만화가 인상적이었죠. 더불어 지금은 팀장급으로 올라간 정태룡 기자의 카리스마.
하지만 정기자가 군 입대하고 나니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서 사다말다사다말다 하다가, 게임라인이 망하더군요. 다음엔 월간 플레이스테이션과 게이머즈가 나오고... 그래서 게이머즈로 옮겨갔습니다. 돌아온 정기자는... 글쎄 이전 만큼의 충격은 아니더군요. 왜일까. 역시 그런 경향 자체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요. 그래도 다른 기자들의 글도 재미있으니까...
지금도 PS2의 TV 광고를 보고 군대에서 놀라던 기억이 새롭군요. 그래서 국내 게임계도 새롭게 커지나 했는데... PC 패키지가 완전 사망하고 비디오 게임계도 생각만큼 크지는 않은 걸 보면 그냥 옮겨간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 잡지도 몇개 있던게 다 망하고 이젠 게이머즈와 플레이스테이션 밖에 남지 않았군요.
10년도 더 전에 마이컴이 망할 때도 느낀 거지만, 보던 잡지가 폐간된다는 건 단순히 정보 수집의 창구가 막힌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4주년 지난 게이머즈, 앞으로도 번창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