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5. 10. 6. 18:25
  마사코 - 일본 왕실에 갇힌 나비  마틴 프리츠 외 지음, 조희진 옮김
책은 왕실 가족간의 관계와 세대간의 권력 다툼에 관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펼치며 왕세자비 마사코의 비극적 운명을 조명한다. 우울증, 자살 시도설, 고부갈등, 정신질환 등... 이를 통해 일본 왕세자비 간택 방법과 일본 왕실, 그리고 일본의 종교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과 함께 일본의 문화와 그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일본문화 연구서이다.

옆나라의 내가 보기에도 일본의 국왕은 존재감이 없다. 실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얘기가 아니다. 활동이 거의 없고 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겠다는 거다. 기껏해야 한국에 일제 강점기와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해라 못 하겠다 이럴 때 욕 먹는 존재랄까.

일본의 현 왕세자비 마사코는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 유학까지 한 유능한 커리어 우먼으로, 원래는 결혼에 별로 생각이 없었으나 왕세자의 끈질긴 구애와 "왕가의 한 명으로도 국가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설득에 왕세자와 결혼을 했다. 옥스퍼드에서 유학한 왕세자나 왕세자비 마사코나 아마 일본 왕실을 영국처럼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그리고 국가의 심리적인 중심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에 의해 왕자만이 왕이 될 수 있는 일본에서, 마사코의 나이가(당시 30) 아기를 낳기에 상당히 불안하다고 생각한 일본 왕실은 왕세자비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해외 순방도 없고 국내 활동도 제한 받은 왕세자비는 '적응 장애'라는 정신병까지 앓게 되고, 왕세자는 왕세자비를 보호하기 위해 왕실의 행위를 폭로한다. 그리고 국민의 미움을 받게될까 두려운 왕실은 반대로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뭐 끝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현실의 이야기므로 책은 일단 여기에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남의 나라, 남의 집안 사정엔 사실 별 관심 없고, 책을 읽으면서 '왕'과 '왕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록 우리 나라의 왕가는 통째로 일본에 끌려가서 평생 감시당하며 살다 이국 땅에서 죽어갔지만.

사실 다른 나라의 왕가 사람들 평소에 뭐하고 사나 좀 궁금했었는데, 책에서 잠깐 언급한 영국 왕실의 자선 사업 규모를 보니 이건 엔간한 국제 기업 뺨 치고 등 때리고 엎어메칠 정도다. 여왕과 왕세자가 이름을 올린 자선 사업 단체가 600여곳이고 1년에 편지를 1만 2천통씩 쓰고 모임에 수천번 참가하고... 몸이 남아나나? 그렇게 해서 모으는 기금이 1년에 1억 파운드라. 물론 그들은 여러가지 정치적, 외교적 사안에도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하고 외교적인 노력도 활발히 한다. 으음... 이 정도면 정말 왕가 유지할만 하겠군.

어쨌거나, 책을 읽어보니 왕세자 부부가 꽤 열린 사고를 가진 거 같고, 마음에 든다. 원만히 해결이 되어 일본 왕실이 바뀌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살이나 이혼 같은 극단적인 파경에 이르지 않는 한 그들이 다음 일본의 왕이 되겠지. 그 때 이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과거 만행에 대한 사과는... 당분간은 어렵겠지. 보수 우익이 권력을 잡고 왕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