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GDragon 2007. 12. 28. 12:12
  나는 전설이다 - 밀리언셀러 클럽 0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핵전쟁 후,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병으로 인해 세상은 흡혈귀로 뒤덮인다. 그리고 한 남자만이 살아남는다. 낮에는 시체들에 말뚝을 박고, 밤이면 깨어난 흡혈귀들과 죽음을 건 혈투를 벌이는 지구 최후의 남자 로버트 네빌. 하지만 이렇게 인류가 멸망하고, 흡혈귀가 날뛰고 있는 세상임에도 네빌의 일상은 평온하던 시절과 다르지 않게 반복적이다.


한국의 출판업계의 상황을 대표하는 책 중 하나다. 목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본편은 200여페이지 뿐이고 나머지 250 페이지 가량은 원저자의 다른 단편으로 채워져 있다. 진작에 출판하고 싶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영화가 한국에 개봉되어 겉띠에 영화 포스터가 들어가는 상황이 아니면 옛날 책 출판은 자살 행위겠지. 하긴 나도 영화 아니면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지만. 종이도 고급이라고 하고 값은 11,000원. 어떤 문화가 대충 문화에서 서브 컬처로 가버리면 판매량은 전체적으로 줄지만, 그 판매량에서 가격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된다. "살 사람은 다 산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그 한정된 수량 안에서 이익을 최대한 남겨먹어야겠지. 책 자체가 서브 컬처가 되다니. 씁쓸한 얘기다.

목표가 나는 전설이다 뿐이라서 그것만 읽고 말았다.

뭐랄까……. 슬픈 이야기다. 여러모로. 그리고 잘 써진 이야기이도 하다. 기존의 흡혈귀 소설에서, 흡혈귀는 새로 등장한 인간의 변종이었고, 세계는 여전히 원인류의 것이었다. 따라서 흡혈귀는 개체별로는 강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약자의 역할이 된다. 약점이 많아 숨어다녀야 하는 점도 한 몫 하고. 그러나 이 소설은 그것을 뒤집어 버렸다. 정이 반이 되고 반이 정이 되었다. 소설 자체가 배경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아 꽤 익명성을 띠고 있기에 이런 상황의 발전은 높은 문학성을 가진다. 문학성이라는 단어가 좀 안 맞는 느낌이 드는데…… 해석한답시고 이리저리 갖다붙여도 다 대충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런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밤마다 찾아오는 고독, 다른 생존자가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등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것은 '개'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본 영화 소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얘기가 있던데, 그만큼 소설에서도 비중있는 장면이어서 그럴 것이다.

직접적으로 들이닥치는 공포는 없지만, "나 밖에 남지 않았다" "희망이 없다"라는 것이 주인공과 독자를 느슨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옥죄고 있다. 좋은 공포 소설이다.

P.S. 1: 읽기 전에 뒤쪽을 봤다가 후기에서 글 자체에 대한 일종의 미리니름을 당해서 읽는데 흥미를 좀 잃었는데, 사실 그게 가장 무난한 정답이라는 건 인정하겠지만, 결국 평가는 각 독자가 하는 것이므로 그런 정답 제시는 일종의 월권이 아닌가 싶다. 뭐 벌써 50년이나 됐으니 "정답 평가" 정도는 있을 법 하지만.

P.S. 2: 난 영화는 아직 안 봤지만, 사실 아무리 헐리우드라고 해도 소설의 영화화는 '핵심'을 짚지 못하고 시각 쪽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서(영화니까 당연하지만) 원작을 읽은 이상 안 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DGDragon 2006. 11. 14. 11:59
  워크래프트 1 - 드래곤의 날(상)  리처드 크낙 지음, 서계인 옮김
게임 ‘워크래프트’는 판타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이번 소설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그 출시를 학수고대하는 ‘워크래프트 3’를 게임보다 먼저 소설로 펴낸 것. 소설은 게임의 주된 요소와 직업군, 유닛들을 취사해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을 그려냈다.

붉은 용의 수장 알렉스트라자가 오크에게 속박당했다 풀려나던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일단 번역자의 워크래프트에 대한 이해도도 별로 좋지 않지만, 번역자의 몰이해라는 블로킹을 뚫을 정도로 원저자의 글빨이 좋지도 않다.

단순한 설명과 행동의 끝에 결말. 굉장히 싱거웠다.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잘 알고 있지 않은 이상(와우와도 접점이 거의 없다. 워크래프트 2와 3, 그리고 5대 위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읽어도 별로 재미를 못 느낄 듯 싶다.

덧 - 재미가 있든 없든 공식 발매니 공식 설정인 셈인데, 내가 알고 있는 워크래프트 세계의 모든 공식 설정 중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이종족간의 로맨스가 나온다. 작가의 취향인가. 가로나는 현 시점에선 로맨스의 결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므로 제외.
posted by DGDragon 2006. 8. 20. 20:00
  눈물을 마시는 새 - 전4권  이영도 지음
로 한국 판타지소설계의 정상에 선 이영도의 신작이 출간됐다. 이전 작품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제목은 '백성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마시는 왕'을 의미한다.

미리니름 주의.

이영도는 모든 종류의 소설가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동시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작가다.

그는 글빨이 좋다. 소설이란 결국 이야기인 것,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아무리 무슨 상을 받고 무슨 베스트셀러라도 내가 재미없으면 그만. 하지만 이영도 작가의 소설은 뭐든지 재미있다.

사소한 배경 묘사부터 심리적인 이야기, 시시한 농담 따먹기부터 문단, 권별로 나가는 거대한 이야기까지, 그 모두를 흥미롭게 전개해나가는 솜씨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독창성 있는 설정에 평상시의 상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여러 언급들이나 계속 등장하는 반전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의 이야기다. 드래곤 라자와 단편집을 제외한 모든 이영도 소설은 위에 쓴 대로의 장점과, 또 하나의 공통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찜찜함'

이 찜찜함이란, 이해불가능에서 오는 찜찜함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마치 학생을 앞에 둔 교사처럼, 처음에는 조금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을 해준다. 등장 인물들은 서로에게 설명하고 서로에게 해설하고 서로를 이해시킨다. 정말 쓰잘데기 없이 길다고 느끼면서 읽다 보면, 등장 인물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설명이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준다. 하지만 절정 - 결말 부분에 가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줄어든다. 인물들은 그저 감탄하고 놀라워하고 화내고 행동할 뿐이다.

그러다 끝. 그래서 나는 당황해서 방황한다. "뭐야 이거?"

거의 중후반부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결말에 이르는 부분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알 수 없다. 그들은 뭘 깨달았고 뭘 결심했고 도대체 어떻게 움직인 건가.

눈마새에서 보면, 거의 막판까지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고 있었다(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 나늬와 보늬? 나늬와 보늬가 무엇인지 설명이 본문에 거의 처절하리만큼 없는 상태에서 도 닦는 승려가 던져주는 화두처럼 나늬와 보늬를 운운하면 뭘 어쩌란 말인지. 그 시점에서 내가 나늬와 보늬란 것에 대해 가진 지식은 "모든 종족에게 미인으로 보이는 어떤 것" 뿐이었다. 그게 케이건 드라카에겐 무슨 의미가 있고,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무슨 영향을 미쳤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은 다 뭔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들은, 읽었고 기억은 하지만 개연성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만약 작가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결말"을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중간에 그렇게 자잘하게 "오해를 할 수 없도록" 해놓고 막판에 가서 방관한다면 누가 납득할까...

이것은 후치가 막판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데 열성을 다한 드래건 라자나, 아예 설명할 필요가 별로 없는 단편을 제외한 그의 모든 소설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정말 자괴감을 느낄 정도. 재미가 없거나 작가가 글을 못 쓴다고 판단했다면 그냥 냅두고 잊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텐데 그걸 짐작조차 못하는 거다. 그게 정말 답답한 것.

어쨌든 눈마새를 다 읽었다. 그리고 퓨처 워커와 플라리스 랩소디에 붙였던 분류판을 눈마새에도 붙였다. "재미는 있으나 이해 불능".
posted by DGDragon 2006. 5. 15. 20:41
  애완동물 공동묘지 - 상 - 밀리언셀러 클럽 033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고전적인 좀비 이야기를 '가족애'라는 소재와 결합시킨 장편소설. 완벽하고 화목한 미국식 '가족애'의 이면에 잠재된 공포를 짚어 낸다. , , 와 더불어 스티븐 킹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83년 발표 당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코스모폴리탄」, 「워싱턴 포스트」 로부터 '에드거 앨런 포를 뛰어넘는 최고의 공포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밀리언 셀러 클럽이라... 잘 나가는 작가의 과거 작품 발굴 쯤 되나.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이 처절하다.

루이스는 의사다. 그리고 예쁜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있는 가장으로서, 한 대학 진료소에 직장을 얻어 이사를 왔다. 시골이라 비교적 싼 값에 큰 집을 샀고, 맞은 편 집의 이웃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집 앞 도로에 항상 거대한 오링코 트릭이 오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애완동물의 죽음, 대학생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로 나오는 여러 죽음과 그 땅의 힘에 대해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 광고대로 공포물인 것 같지는 않았다. 글쎄... 읽으면서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의 전개는 무척 궁금했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1장 중간까지 읽으면서 책 겉면에 쓰인 글과 합쳐 끝까지의 모든 전개를 대충 다 예상해버렸다. 그리고 그게 거의 다 맞았다. 궁금한 건 에필로그 정도? 소설로서의 재미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본다.

그나저나 책 겉면에 XX 소설이라고 써놓다니 책 전개를 다 까발리는구만. 아무 생각도 없는 친구들인가...